간만에(?) 이어폰을 충동구매 해봤다. 화제의 제품이라는 에티키즈 5라는 녀석. 사실 예전에 er4s와 거의 동일한 성능을 자랑했던 im716 [http://flymoge.tistory.com/497을 구매한 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고질적인 필터 문제때문에 에티키즈가 참 솔깃하게 들려왔다.


하극상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이 녀석은 엄청난 고가이어폰인 er4 시리즈의 소리를 가지면서 가격은 단돈 6만원! er4가 20만원 후반대의 가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면 확실히 저렴한 가격이다. 물론 수치상으로는 er4 밑의 HF5, MC5도 크게 다른 소리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제품은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초기물량이 완전히 동나버린 상태이다.

이 제품은 모델명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 아이들의 청력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MP3의 볼륨을 끝까지 올려야 적당히 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것이다. 너무 큰 소리를 들어 청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아무리 볼륨을 올려도 소리가 크게 안나오는 이어폰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전에 UE에서 만든 Loud Enough라는 이어폰도 이런 컨셉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이 이어폰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소리다. 아이들용이라고 아주 저렴하게 나온 것 치고는 소리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 사이트(이제는 대부분 아시리라고 본다)에 올라온 주파수 응답 그래프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의 평가도 괜찮은 평. 예전의 im716을 떠올린다. 일단 지르고 보자였다.

에티키즈는 3과 5가 있는데 차이점은 3에는 리모트가 달린 것 외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그런데 가격은 엄청 비싸지)

제품박스를 보고 놀랐다.



아이들용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공대감성 뙇!! 그리고 상자가 매우 가볍다. 뭘 넣었길레?

그리고 그 패키지를 보고 더욱 놀랐다.

개인정보 보호을 위해 사용한 모자이크 외 일체의 조작을 가하지 않은 사진입니다.


종이박스도 얇았는데 내부 구성물은 더 심하다. 이게 전부다. 진짜다. 농담이 아니다. 진짜 파우치, 설명서, 안내서 3장을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요즘 중국산도 이렇게 포장하지는 않는다. 엄청난 원가절감을 볼 수 있었다.

화면상으로는 또 크게 보일지 몰라서 내 폰과 같이 찍어보기로 했다.



넥서스 S와의 크기비교. 담배를 안 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담배갑이랑 비슷한 사이즈라고할까? 아주 실용적인 사이즈라고 할 수 있다.

구성품은 이게 전부



왼쪽부터 조금 작은 회색 3단팁, 조금 큰 흰색 3단 팁, 일명 해파리팁이라고 불리는 폼팁, 클립. 끝.
일반적으로 아동이 사용할 수 있는 1단 실리콘 팁은 온데간에 없고 "너의 귀를 뚫어버리겠어" / 혹은 "귓구멍을 강제로 강x하는 느낌"이라는 길쭉한 3탄팁만 넣어준 것으로 보아 아무리 봐도 이건 아동용이 아닌 것 같다.

사용설명서도 키즈5가 아니고 키즈3용을 넣어주는 센스. 이어폰도 이걸로 넣어주면 안되겠니?

기본적으로 달린 조금 어두운(작은) 3단팁을 꽂고 들어보기로 했다.

귀에 고정이 안된다.


아주 쑥 들어가긴 한데 너무 작아서 고정이 안 된다. 대부분의 커널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귓구멍이 커지는 현상이 있다고 하는데 커널형을 오래 사용하다보니 귓구멍이 많이 커진 것 같다. 심지어 더 큰 흰색 3단도 왠지 모르겠지만 고정이 안된다. 할 수 없이 해파리팁을 끼우고 사용하다가 나중에 다른 팁으로 바꾸기로 했다.


716에 딸려온 3단 회색팁을 장착해보았다. 그나마 착용감이 좋았다.

디자인은 기존의 716과 아주 유사하게 생겼다. 단 716이나 MC5보다는 유닛크기가 좀 더 작은 정도.
 

백원과의 크기비교. 큰 편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처음 해파리팁을 꽂고 들은 소리는 여러 의미로 충격이었다. 

"고음이 상당히 쏘고 저음은 텅 빈, 흔히 말하는 깡통소리"

칭찬과는 맞지 않는 소리도 충격이지만 5k대가 엄청 쏘는 것이다. 치찰음 부분보다 살짝 높은 부분. 예전에 리뷰했던 coa-803보다는 많이 덜하지만 dt440 특유의 중고역이 강조된 느낌보다는 확실히 심한 쏘는 소리였다. 보통 폼팁이 고음을 깍아먹는 것에 비해 상당히 악매칭이었다.

저역은 깊이가 부족하고 타격감이 엄청났다. 탕탕 때리는 맛이 장난이 아닐 정도. 트리플파이가 웅장하고 스케일 크게 팍팍 때려주는 것이라면 이놈은 난쟁이가 뭉특한 막대기로 푹푹 찌르는 듯한 저음이다. 귀가 나갈 것 같은 쎈 타격감.

하지만 가장 웃긴것은 극저음과 극고음은 완전히 잘라먹었다는 것이다. 저음은 안 나오는 것은 아닌데 양이 꽤나 작은 편이고(심지어 er4s, im716과 비교해도) 울리는 느낌은 전혀 없다. 웅장함이 하나도 없다. 잔향이 없으니 스케일도 줄고 깡통소리같이 느껴진다.
고음은 MC5의 전례가 있으니 예상했지만 높은 고역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듯 하다. 답답한 느낌은 적지만 카랑카랑하다는 느낌은 없다. 
또한 해상력이 하극상을 일으킬 정도로 뛰어나진 않다. 저가 진동판에서 흔한 뭉텅뭉텅 뭉치는 느낌은 아니지만 전자음들이 복잡하게 표현되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느껴진다. 기존 716과 비교해도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또한 공간감도 좁은 편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팁이 문제인가 싶어서 위의 회색 3단팁으로 교체하고 들어보기로했다. 5k대의 엄청 쏘던 현상은 줄어들고 저음이 조금 더 생겨났다. 해파리 팁이 잘 어울리지 않는건가 아니면 내 귀와 잘 맞지 않는건가 잘 모르겠지만 저 716의 회색 3단팁이 더욱 나은 소리를 들려준다.

3단팁으로 들어본 소리는 전반적으로 er4를 비롯한 에티모틱 계열의 소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단단하면서 양이 작게 느껴지는 저음, 귀에 가까히 다가와 보컬을 또렷히 잡아주는 중음, 대역폭은 넓지 않지만 어둡지 않은 고음까지. 다만 er4s에 비해 저음이 조금 줄어들었고, 고음역이 살짝 정돈되고 차분해졌다. 이건 충분히 취향차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한 5k 피크다. 이것 때문에 고역에서 귀가 아프고 피곤해진다. 어떤 분들은 MC5 필터를 박아넣으니 피크가 잡힌다는 말이 있던데 너무 비싸다. 이어폰이 6만원인데 필터가 2만원 가까이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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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내용

여러 팁을 교체해보면서 최종적으로 exs-x20의 더블팁으로 정착했다. 회색 삼단팁보다 저음이 적고 대역폭이 아주 살짝 줄어드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 팁을 사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5k 피크를 어느 정도 억제시켜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작성한 후에 mc5용 화이트 필터를 구매해서 다른 제품에 장착한 후 비교청음을 가졌는데 회색 3단팁+필터 소리와 x20 더블팁+노필터 조합의 소리가 상당히 유사했고 볼륨확보 면에서 필터가 상당히 불리했기 때문이다. 필터를 착용하면 1 Vrms 출력까지 가야 음량확보가 넉넉해지는데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여기까지 출력을 못 낸다. 특히 아웃도어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소리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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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악평만 쓴 것 같아서 장점을 나열해보면


1. 차음성이 엄청나다. 저가 커널대에서 이정도의 차음성은 본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이 이어폰을 주었다간 로드킬 당하기 딱 좋을 듯한 차음성이다. 실제로 사용권고안에도 움직이면서 사용하지는 말라고 적혀있긴 하다.

2. 보컬의 맺힘이 좋다. 여성보컬이든 남성보컬이든 음악이 아닌 노래를 들으면 소리가 아주 좋다. 
그리고 아주 또렷하다. 배경음보다는 보컬이 강조되어 목소리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이 배가 된다. 

3. 선이 꼬이지 않는다. Non-PVC 코드를 사용한 듯 유코텍에서 보던 탱탱한 선재를 연상시킨다(단 이 경우에는 정착용 시 엄청난 터치노이즈를 각오해야한다).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잘 꼬이지 않고 보관하기도 좋다.

4. 튼튼해보인다. 플러그도 변형 1자, 스플리터도 마감이 잘 되었다. 유닛도 잡아뜯지 않는 이상 큰 문제는 없을것이다.  
  

5. 싸다 

그렇다. 이 제품의 모든 단점을 상쇄해줄 가치는 바로 가격이다. 6만원 짜리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된다. 가격을 보고 이 제품을 바라보면 이 가격대에서 왜곡이 적은 정직한 소리를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느껴진다.

이 제품에서 에티모틱의 er4와 같은 가치를 바란 당신이라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6만원 이하의 커널을 생각하고 이 제품을 구입한 것이라면 분명 당신의 청각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이렇게 왜곡이 없고 평탄한 동가격대 이어폰을 본 적이 없다. 그 만큼 정직하다.

단, 이 이어폰은 대중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래의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귀가 적당히 커서 길쭉한 3단 팁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가
패키지나 구성품 같은 것을 하나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오직 소리 하나만을 추구하는가
저가형의 자극적인 V자 소리에 질려서 심심하고 평탄한 소리를 원하는가
하지만 저역과 고역이 좀 잘려도 괜찮은가
에티모틱의 기존 제품들에 대해 좋은 인상이 있는가
BA가 아니라 진동판을 사용하여 발생하는 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가
선이 좀 탱탱하여 클립을 사용하지 않으면 터치노이즈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있는가
출력이 세지 않으면 모기소리가 나서 소리를 많이 크게 올려야한다는 것을 알고있는가
이래도 6만원이라는 돈을 아이들용이라는 에티키즈에 쏟을 자신이 있는가


등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힘든 이어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점들을 모두 인지하고 그럼에도 이어폰을 구매하고자 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 가격대 최고의 이어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