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에게까지 오는 데 많은 경로를 거칩니다. 여기에선 디지털 메체를 사용한 것으로 한정해서 보도록 하지요.

소스(CD, MP3 파일)

DSP(디지털 파일을 아날로그 파형으로 변환+앰핑) 

스피커,헤드폰,이어폰

매질(공기+공간) 


여기까진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이란 게 귀로 간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음의 파형을 받아들여 음악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뇌의 판단이기 때문이죠. 

예들 들어보면 감기로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이때, 고가의 W5000 헤드폰과 저가의 중국산 헤드폰을 들려줍니다. 평소라면 당연히 W5000이 좋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잠을 자고 싶은데 이 두 헤드폰이 내는 소리는 그저 잡음에 가까울 정도로 짜증날 뿐입니다.
또 다른 예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들어가는 군인에게 저질 핸드폰 스피커로 "이등병의 편지"를 들려줍니다. 아무리 조약한 소리라도 그 군인의 마음을 크게 흔들 수가 있습니다.
클럽에 갔더니 스피커에서 춤추기 좋은 클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컨디션이라도 부킹에 성공한다면 음악은 점점 나를 춤추게 만들고 흥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언쟁으로 기분을 잡친 경우라면 클럽음악은 귀만 찌르는 음악이 되어버립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클럽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누군가 잔해에 깔린 장면을 본 상황에서의 클럽음악은 과연 어떻게 들릴까요?


이어폰 감상기를 종종 적는 본인은 단기간에 쉽게 평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몸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쓰던 글을 보류하고 심하면 삭제해 버립니다. 
특히나 몸이 피곤하면 평소에 듣던 음악과 느낌이 달라집니다. 중저음이 강화되고 중고음이 매우 날카로워져 귀를 마구 찔러대는 소리를 만듭니다. 즉 음악이 답답해지고 피곤해집니다. 특히 활발한 음악도 어딘가 처지게 들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이어폰을 던저버리고 싶어지게 됩니다.
청음샵에 갔을 때 아주 미묘한 기분의 차이로 듣는 소리는 달라집니다. 단 하루동안 청음샵에 가서 그 기기의 소리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저도 그것으로 시행착오를 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는 청음샵을 1주일간 방문해서 아주 신중하게 제품을 고르더군요.

예전 오디오관련 서적에서 이러란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절대 몸의 컨디션이 틀어진 상태에서 스피커 선택을 하지마라. 감기가 있거나 피곤한 경우 정확한 소리판단이 힘드므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과 같이 태풍이 올라오는 날. 혹자는 기압차 때문에 소리가 달라진다고 말하지만 전 몸이 피곤하고 기분도 우중충해 청음하기 참 나쁜 날이었습니다. 새로운 es703의 리뷰를 적다보니 나도 모르게 악평만 계속 적고 있더군요. 문득 기분의 중요성을 깨달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