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IT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아키하바라 근처에 새로운 도시개발계획을 내놓았다. 그 이름은 아키하바라 크로스필드. 원래 전자상가로 유명한 아키하바라에 일본 IT기업의 성장을 돕고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앞에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츠쿠바 익스프레스도 대규모 R&D 단지인 츠쿠바와의 연개성을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그 시작점이 아키하바라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아키하바라 크로스필드 건물은 츠쿠바 익스프레스 역과 바로 연결되어있다. JR선과의 연개성도 좋아 공항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글 검색 펌)

이 옆의 큰 전광판에서 캠퍼 블루레이 광고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물 분위기와는 다르게 약간 의외였는데 찍으려고 할 때 광고가 바뀌는 바람에 찍지는 못했다.

설명은 거창한데, 사실 아키하바라 관광에 있어서 가장 실속 없는 관광지가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2005년에 완공되어 위층은 오피스로, 아래층은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는데, 직접 가 보면 알겠지만 여기만큼 건물이 텅텅 비어있고 썰렁한 곳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건물 자체가 일본답지 않게 너무 큼직큼직하다.

아키하바라 크로스필드는 다이비루랑 UDX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다이비루의 경우 관광객이 볼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크로스필드라고 하면 UDX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UDX의 경우 애니 이벤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건물로 인터넷 라디오의 공개녹음이 가끔씩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행하는 자체 라디오 공개녹음도 있다. 1~3층에는 음식점들이 눈에 띄는 곳에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끼를 때우기엔 너무나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뿐이었다. 나는 1층에서 한 바퀴씩 돌아서 한 층씩 올라가면서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정말로 썰렁하다. 사람이 거의 없고, 볼 것도 없다. 그나마 4층에는 도쿄 아니메 센터가 위치하고 있어 그 층에만 유난히 사람이 많다. 여기에는 한번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하필 그 시간에 라디오 공개녹음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건물 외형밖에 보지 못했다. 다만 앞에서 나누어주는 팸플릿만 챙겨서 돌아왔다.

나눠주는 팸플릿. 그 달 것이랑 전달 것이랑 2개가 있었다.

잠깐 일을 보러 화장실로 갔다. 최신식 빌딩답게 화장실 시설은 이때까지 갔던 화장실 중에서 최고였다.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삐까뻔쩍이다. 문제는 남자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는 모두 비어있는데 대변기는 모두 사용 중이라는 것. 신기한 것은 대변기의 경우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잠금 장치를 돌리면 '사용중'이라는 빨간 딱지가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다. 천장에 있는 적외선 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계속 점등해 있으면 '사용중'이라는 뜻이 된다. 처음에는 문이 모두 닫혀있고, 사람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어 매우 당황했으나, 천장을 바라보니 센서가 계속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사람들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내가 가장 먼저 와서 대변기 앞에서 한줄서기로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 뒤에는 자연스럽게 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10분이 흘렀는데도 안의 사람이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이 내려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뭐지? 라고 점점 서있는 자세가 흐트러질 무렵 직원 한 분이 들어와서 대변기와 소변기를 살펴보고 가더니 밖으로 나가서 외치는 말이

"소변기 비어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들어 닥치는 사람들. 웅성웅성거리면서 금새 소변기가 꽉 들어찬다. 그리고는 금새 새로 만들어지는 소변기 줄. 세상에, 줄을 너무 철저하게 서다 보니 소변기를 사용할 사람들도 대변기 줄에 끼어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 사이 동안 단 한 명도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서 소변기가 비어있는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줄서기 의식이고, 어떻게 보면 꽉 막힌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 대변기에서 한 사람이 "스미마셍"이라는 말과 함께 나왔고, 나는 그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을 보고 나니 친구 녀석이 나 죽겠네 라는 표정으로 좀 돌아가서 쉬자고 한다. 사실 앞에도 늘 말하지만, 도심에서 딱히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겠다.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음식점. 특히 아키하바라는 유동인구가 너무 많아서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계속 무의식적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뭐 이 정도면 대충 겉핥기 식 구경은 한 것 같으니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조금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