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 2일째 - 아키하바라(秋葉原)

먼저 아키하바라라고 하면 유난히 이상반응 하는 분들을 위해 미리 말하는데, 여기는 오타쿠 마을이 아니다. 오타쿠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나도 약간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처음 아키하바라에 들어갔지만, 모든 것이 내 예상을 빗나갔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스에히로쵸 역에서 내리면 딱 이런 풍경. 여기가 아키하바라가 맞나 싶었다. 토요일 12시라서 꽤나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느 도쿄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정말 역을 잘못 내린 것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로. 다만 화면 구석에 있는 츄오도리 표지판 만이 여기가 아키하바라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앞의 신호등을 건너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면, 그때부터 슬슬 여기가 도쿄에서 사람이 많은 동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본 가게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어지는 가게들을 보니 전부다, 99% 컴퓨터 부품 판매 가게였다. 간혹 가다 비디오 게임, 콘솔 판매점을 보긴 했어도 건물마다 파는 것들이 모니터, 그래픽카드 등 하드코어 컴퓨터 유저들을 위한 부품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나야 컴퓨터 부품들에 관심이 꽤나 있어서 한번 매장을 싹 둘러보고 나갈 수 있었는데 정작 친구는 재미없다는 눈치였다. 아마 아키하바라=오타쿠 성지 라는 이미지가 있었겠지.

이 글을 보는 많은 사람들도 아키하바라가 애니 또는 게임의 성지라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 어디보다도 애니와 게임을 많이 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키하바라=오타쿠 성지 는 아니다. 여기에는 아직 컴퓨터 부품을 파는 가계들이 우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애니 관련 상품보다는 메인보드 박스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거리에서는 메이드복을 입고 코스프레 가게를 홍보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뭐가 적혀있는지 궁금해서 나눠주는 광고지를 받으려고 했으나, 앞의 사람들이 모두 무시하고 지나가길래 혼자 받기도 무지 뻘줌했다.

미리 말하자면, 이 동내에서 사진기 들고 다니기 무지 쪽팔린다. 메이드복을 입은 분들은 사진기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찍힌다는 느낌이 있다면 소리를 질러 이목을 집중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키하바라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다. 사진을 찍을 새가 없다는 말이다.

지나가면서 받은 메이드 카페 광고지들. 그냥 메이드복을 입은 카페부터 여러 가지 테마를 꾸미고 활동하는 곳들도 있다. 메이드 카페를 제대로 즐기려면 일단 일본어가 되어아겠지. 난 이런 것들에 위화감이 있어서 가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무지무지 비싸다. 한 시간에 1천앤 정도는 기본이라고 한다.)

오므라이스 1,200엔, 스파게티 1,100엔, 생맥주 580엔부터(?), 탄산음료 550엔부터. 날강도 맞다. 정말로 비싸다.

'어서 오십시오'라는 한국어가 적힌 안내장. 이거 말고도 "한국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광고도 받은 것 같은데, 정말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어능력조차 충분히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참고로 혹시 뉴타입 구독자 중에 2009년 12월호를 소유하신 분들은 그 부록을 꼭 챙겨가길 바란다.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 쪽의 매장 설명이 정말 잘 되어있다. 위치는 그냥 둘러보다 찾으면 되니까 특정한 상품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에 꼭 한번 구해서 보길 바란다.

컴퓨터 상점 얘기는 우리나라 용산과 딱히 다를 게 없으므로 지나가고,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애니 상품 위주로 설명한다.

아키하바라에서 애니 상품을 찾으려면 일단 JR 아키하바라 전기상가쪽 출구로 가자. 라디오회관과 게이머즈가 있는 바로 그곳이다. 내가 갔을 때 아직도 아키하바라 역은 공사 중이었다.

건물에 한참 인기 있던, 1일날 마지막 글에서 언급했던 레일건 블루레이 광고가 있기에 찍어봤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찍은 게이머즈와 라디오 회관. 게이머즈가 왼쪽, 라디오 회관이 오른쪽,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이 JR 아키하바라 역이다.

갔던 날이 토요일이어서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머즈 앞의 작은 부스에서 아키하바라 전체 지도를 배포한다. 메이드 복을 입고서 말이다. 찾는 가게가 있는 경우 꽤나 유용할 수도 있으니 하나 챙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키하바라 지도. 45판이라고 하는 거 보니 꽤나 오래 가는 지도인 듯 하다.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메이드 카페 광고. 너무 많다.

참고로 메이드 카페 중에서 왼쪽 맨 위의 나고미와 맨 오른쪽 두 번째 엣홈카페는 아키하바라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카페다. 주말에는 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라고 하니까.

아무리 아키하바라지만 이렇게 유난히 메이드 카페가 많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메이드 카페 아르바이트생 모집 때 내놓은 수당을 보니 시간당 750엔에서 잘하면 1,000엔 이상도 준다고 한다. 엄청나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13,000원이라니. 그만큼 외모나 몸의 노출도 요구하겠지만. 주로 고등학생이나 어린 대학생대의 나이의 여성들이 주로 임금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니까 조금 부끄럽긴 해도 페이가 확실한 것을 선택한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이 메이드 카페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다. 국내법상 메이드 카페가 유흥업으로 분류되어 아르바이트 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주의하자.

뒷면에는 간단하지만 영어로 된 지도도 있다. 일본어를 못하더라도 쇼핑은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다음부터는 아키하바라 매장 소개와 에피소드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