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키하바라에서 호텔로 돌아올 때가 가장 애매하다.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살짝 거리가 있고, 전차나 지하철 타기에는 구간이 애매하고, 한번에 가는 것도 없어서 환승도 해야 한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키하바라에서 JR소부센을 타고 아사쿠사바시에서 내려 다시 토에이 아사쿠사센을 타고 히가시니혼바시에 내려 다시 바쿠로쵸까지 걸어가야 하는, 저 작은 거리를 움직이는 데만 해도 돈은 돈대로 깨지고(130+170엔), 시간은 그다지 줄지도 않는다. 친구를 꼬드겨서 그냥 호텔까지는 피곤해도 걸어가기로 했다.

가다가 본 빌딩. 한번 찍어봤다. 밑에 보이는 전선이 있는 곳으로 야마노테센이 지나간다.

야마노테센이 지나가는 굴다리를 한번 지나서 호텔로 걸어가는데, 눈앞에 무지하게 큰 건물이 나타났고, 마침 나는 한가지 까먹은 유명한 상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요도바시 카메라. 종합전자제품상가로 건물이 정말로 크다. 신주쿠쪽에도 매장이 2개 있고, 수도권 중에 꽤 매장이 있는 것 같다. 건물에는 영어로 요도바시 아키바 (Yodobashi Akiba)라고 큰 글자로 적혀있었다. 궁금해서 일단 들어가보기로 했다.

여긴 기본적으로 전자제품 상가이지만, 매장 구석에는 카페나 기념품, 심지어 화장품도 판다. 층별마다 안내가 되어있긴 한데 한글 안내문은 잘 안보이던 것 같다.

1층에는 휴대폰 천국이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판매처럼 통신사별로 매장이 있어서 판매하는 최신기종의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려있다. 하지만 일본의 휴대폰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 사지도 못하고 줘도 못쓴다. 피쳐폰이라고 하는 일반 휴대폰은 일본 제품이 디자인이 매우 촌스러워도 화면이 커서 상당히 부러웠다. 스마트폰이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아이폰 열풍이 불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2층에는 컴퓨터 매장이다. 1층에도 컴퓨터매장이 있긴 한데 그곳은 완제품이라고 하면 2층에서는 부품 위주로 판매한다. 간혹 지나가다 보면 매장 전체에 안내방송을 틀어서 '몇 분간 특가세일을 실시합니다. 수량한정이니 빨리 오세요' 라는 방송이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그때 기억으로는 노트북을 팔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가격이 그렇게 싼 건 아니다. 아무래도 환율이 좀 있을 때라서 그런지 머릿속으로 단위 환산해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 인터넷쇼핑보다는 딱히 싸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구석부분까지 돌다 보니 계산기, 공 디스크, 잉크랑 토너, 심지어는 복사용지랑 컬러용지까지 팔고 있었다. 정말 있을 만한 것은 다 있었던 것 같다.

3층에는 카메라와 캠코더, 시계들이 있고, 4층에는 영상, 음성 기기들이 있다. 오디오에 푹 빠진 나는 4층엔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실물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스탁스의 정전형 헤드폰과 레퍼런스급 시스템이 의자와 함께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이런 시스템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청음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그 옆에는 헤드폰 회사들끼리 모아 헤드폰 수십 대가 걸려있었다. 여기의 특징은 남 눈치 안보고 제품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려도 직원이 다가와서 귀찮게 굴지 않는다. 단, 직원을 부르면 그때부터는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준다. 한가지 좋은 점이 수십 개의 헤드폰에서 똑 같은 한 곡이 계속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인데, 이게 제품을 비교할 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의 음악을 어디까지 표현해 주는가를 비교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소스도 좋아서 대표적인 값비싼 일반 헤드폰인 오디오테크니카의 W5000 모델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감동이 몰려 올 정도다. 대구 핫트렉스 밑에 있는 청음샵에서는 블로그에서 다운로드 한 저질음악을 틀어주는 것과 천지차이다. 다만 장르가 조금 느린 곡이라서 락이나 이런 음악의 매칭은 시험해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물론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이어폰들이나 헤드폰들도 판매한다.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리는 것들도 좀 아는 사람이 쓰는 비싼 제품보다는 일반인들이 쓰는 저가형 제품의 판매량이 더 많은 법이다.

5층이상은 주방가전이 있고, 게임용품은 이미 충분히 본 것 같아서 그냥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