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를 내려와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슬슬 배가 출출해 지려고 했기 때문에 뭔가 먹을 것을 찾아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일단 머리 속에서 떠오른 메뉴는 소바. 내일 라멘을 먹을 것이고, 규동은 한번 먹었으니 그 다음 떠오른 것은 소바. 친구가 그냥 아무거나 먹자는 말을 뿌리치고 그때부터 소바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도청에서 나와 신주쿠 역 쪽으로 가는 길 중에서 지하상가에 많은 음식점이 있길래 한번 뒤져보기로 했다. 지나가면서 수 많은 메뉴를 보았다. 패스트푸드부터 돈까스, 텐푸라, 중국집, 레스토랑, 심지어는 한글이 적힌 한식집까지 발견했는데 소바가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젠장. 정말로 소바가 먹고 싶었기에 다른 것을 먹었다가 나중에 소바가게를 보면 배가 아플까봐 배고픔을 참고 일단은 신주쿠 역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방향 생각도 하지 않고 소바가게를 찾아 무작정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했고(응?) 앞에는 고층건물들이 가득히 나타났다.

신주쿠 역 앞에 위치한 건물들. 상당히 특이한 디자인이길래 한번 찍어봤다.

신주쿠 역 앞. 정확히는 신주쿠 역 서쪽 출구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서쪽 출구라고 하면 이 곳을 상상할 것이다. 가이드북에서도 이 곳을 서쪽출구라고 보고 길 설명을 여기에서부터 하고 있다. 아마 이 앞에 보이는 도로가 니시신주쿠의 중앙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첫 번째 사진의 오다큐 HALC와 그 위의 비쿠카메라, 두 번째 사진에 살짝 보이는 유니크로(저가의류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일본상표이다). 세 번째 사진의 오다큐 백화점, 네 번째 사진의 케이오 백화점, 그리고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밑에는 루미네1이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JR 동일본 본사 빌딩도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요도바시카메라와 사쿠라야 같은 전자제품 판매점을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말 새삼 느끼지만 일본에는 백화점이 정말 많다. 도쿄 안에서만 벌써 얼마나 많은 백화점을 보았는지, 게다가 규모는 옆으로 길게 쭉 뻗어 있는 구조이고.

아쉬운 점은 이미 시간이 충분히 늦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구경을 했다간 소바는 고사하고 호텔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본전철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자정 근처에 막차가 지나간다. 따라서 넉넉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11시쯤에는 돌아가는 열차에 오르는 것이 좋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충동으로 시작한 겉핥기 식 신주쿠 구경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다시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서 지하상가를 뒤지던 중 유일하게 음식 모형에 소바가 있는 가게를 발견, 아무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메뉴 판에는 대부분 소바가 적혀있어서, 점원에게 무엇을 시키면 좋을까 질문했고, 직원이 종류에 따라서 이것 저것 설명해주긴 하는데, 솔직히 난 소바라면 그냥 포장으로 된 홈메이드 소바라는 것만 알지 이렇게 본토에 와서 면의 종류나 찍어먹는 장의 종류 등을 알 리가 만무하다. 그냥 내 신조에 따라 "가장 적당한", 그리고 양이 가장 많아 보이는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하자 나온 것. 위에 것이 나의 주문, 밑의 것이 친구의 주문이다. 저 소바 그릇이 상당히 길어서 많아 보이긴 하는데 그릇 밑에 나무를 깔아놔서 실제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뭐 일본음식이 다 그렇지. 규동집 빼고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잘 안 보인다. 안 그래도 음식을 2인분씩(특히 햄버거) 주문하는 나인데 그렇다고 메뉴를 2개씩 시킬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친구가 시켜놓은 것 보다는 많은 것 같았다.

나와 친구의 차이점은 나는 그냥 일반적으로 보는 소바인 모리소바(盛りそば), 친구는 자루소바(ざるそば 위에 김이 뿌려진 소바)에 따뜻하게 데워진 간장을 주문해서 그런지 양파라던지 다 세팅되어 있는 상태로 나왔다. 아마 소바가게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리소바, 자루소바 외에도 튀김이 올라간 소바나 달걀, 버섯, 고기 등이 들어간 소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빨간 주전자에 담긴 간장을 컵에다 붓고 위에 야채 등을 첨가해서, 면을 조금씩 집어 간장에 적신 뒤 먹으면 된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야채 칸 한 칸에 놓인 한 이상한 뿌리가 있었는데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일단 갈판과 함께 주는 걸 보니 갈아서 먹으라는 것 같은데 도저히 이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자세히 보면 이파리도 몇 개 달려 있어서 좀 귀엽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뿌리를 어디에 써야할 지 몰라서 미안하지만 다시 점원을 불러서 질문했다. 내가 직설적으로 이게 뭐냐고 물으니까 직원이 꽤나 당황하는 눈치. 소바가게가 처음인 외국인이라고 설명하자 여전히 당황한 어투로 '아 이거요, 이 판에 이렇게 갈아서 드시면 됩니다. 와사비라는 거라서 넣으면 매운 맛이 날 겁니다'. 아하! 이게 와사비라는 것이군하. 그리곤 친구와 난 어이없음+놀람+신기함의 웃음을 뿜어냈다. 매번 먹을 때 마다 패이스트 형태로 된 와사비만 보아왔던 나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고추냉이라고 불리는 식물의 땅속줄기를 간 것으로 넣으면 매운 맛을 낸다고 한다. 단 살짝 간 다음에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는 맵지가 않았다. 한참 즙이 생길 정도로 갈았는데도 딱히 맵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10시가 넘어가니 가게가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것도 있었고, 사람들이 슬슬 일어나는 것을 봐서는 확실히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가게에 모든 사람이 들릴 정도로 '가게 주문 그만 받겠습니다 (オーダー閉まります)'라는 말을 크게 외쳤다는 것. 무슨 의미였을까?

음식은 그럭저럭. 딱 가기로 작정해놓은 곳이 아니라서 그런지 특별하게 맛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돌아올 때는 왔던 방향의 역방향으로 향해 호텔로 돌아왔다. 참고로 돌아올 때는 급행을 탔는데, 내리는 역이 환승역이라서 그런지 정차하더라. 급행열차를 탈 때는 지하철 기둥에 붙어있는 정차 역 노선도를 잘 보고, 타는 열차가 어떤 열차인지 잘 확인하고 타길 바란다. 아쉽게도 토에이 지하철은 이런 노선도나 시간표에서 한글을 많이 볼 수가 없다. JR쪽에는 한글지원이 잘 되어있으니 그 쪽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래 사진은 동영상에서 뽑아온 사진이라 화질에 대한 양해를 구함.

전철 안 풍경. 지하철 안이 우리나라보다 좀 좁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확실히 대구지하철보다는 작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정말로 한 분도 빠짐 없이 모두 손에 뭔가 들고 있거나 자고 있다. 책과 신문은 기본이고, 휴대폰도 많고, NDS, PSP도 간혹 보인다. 참고로 일본의 휴대전화망은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면 끊어진다. 역 안에는 전파가 닿지만 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파가 끊어지게 된다. 문자를 하는 건 아니라고 치더라고 어르신들까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난 진심으로 이분들이 휴대폰으로 뭘 하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에스컬레이터 탑승법.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왼쪽은 고정줄, 오른쪽은 걸어 올라가는 줄. 물론 사람이 많을 때의 얘기고, 사람이 적으면 막 올라간다.

개찰구. 앞에 사람이 인식이 안돼서 또는 잔액이 부족해서 돌아 나오는 것을 찍었다. 위에 파란 표시등이 카드 인식기로, 그곳에 카드를 가져다 대면 앞의 문이 열리는 방식.

지하통로. 갈아타는 지하철, 전철이 3개이고, 각각 역이 다 달라서 지하에 이렇게 긴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밑의 초록색 S는 토에이 신주쿠센, 분홍색 A는 토에이 아사쿠사센, 밑에 가려진 하나는 검은색 열차모양의 JR 소부센을 가리킨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오후 11시의 거리. 정말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동네이다. 그나마 이날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차라도 몇 대 지나갔지 그 전날은 완전히 침묵상태였다.

그렇게 이제 슬슬 피로가 쌓이기 시작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바로 잠을 청했다. 사실 심야애니 방영하는 게 없어서 정말 아쉬웠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