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700 구매를 위해서 글을 보시는 분들은 예전에 작성한 감상기를 먼저 보시고 이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flymoge.tistory.com/17
왜 PRO700은 죽도록 까이는가 – PRO700 사용기
일본여행 때 꼭 한가지를 사겠다는 작정을 하고 아키하바라에 간 적이 있다. 애니 상품이나 컴퓨터 부품이 아니였다. 내가 노리고 있던 것은 헤드폰. 2년째 쓰고 있던 PRO700 헤드폰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아서 아키하바라의 요도바시에 가서 헤드폰을 청음한 적이 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디오테크니카 헤드폰을 한쪽 벽면에서 시작해 상당히 많은 제품을 진열해 두고 있다. 그리고 청음의 공정한 비교를 위해 동일한 1개 음원을 무한루프시켜 두었다. 가장 고가인 W5000부터 단계를 내려가며 오픈형인 AD700이나 A700쯤에서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PRO700을 보았다. 워낙 고가제품들을 들어와서 내가 소유하고 있던 제품을 듣고 상당히 실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확실히 소리는 답답하고 해상력이나 음의 밀도는 앞에서 들었던 W5000에 비하면 허접했다. 그러나 묵직한 저음에서 나오는 묘한 힘은 2년 동안 들어왔던 내 헤드폰임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 곡은 PRO700에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잔잔한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독특한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RO700 이야기만 하면 일단 까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계측치가 쓰레기라던지, 피크가 너무 심하다던지, 저음밖에 안들린다던지, 고음은 갖다버렸나던지.. 음질, 음색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디자인만 살았지 무겁고 답답하고, 불편하다라는 말이 많다. 난 앞에서 쓴 사용기에서 그 일부분을 부정했지만 그래도 PRO700의 추천도는 좋음 보다 나쁨에 가깝다.
외국의 리뷰를 참고하면 확실히 그런 면이 드러난다. 원래는 DJ 모니터링용으로 디자인된 설계. 하지만 DJ용으로는 욕을 상당히 먹었다. 과연 제대로 연구나 하고 낸 모델이냐며 말이다. 실제 DJ하시는 분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어떤 분은 "소리는 동급 제품보다 좋지만 듣고 있는 음은 원음과는 다른 음이다" 라고 평가했다.
아마존 사용기를 보면 소리 쪽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오히려 저임피던스로 인해 구동이 정말 쉽고, EQ를 적용하지 않아도 딱 맞는 소리를 내준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무거운 무게와 매우 약한 내구성을 들었다.
정말 그럴까?
PRO700을 정확히 2007년 12월에 구매했다. 얼마 뒤면 3년째 사용하는 셈이다. 약 3년간 사용해오면서 느낀 점을 통해서 정말로 PRO700은 어떤 녀석인가 한번 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계측치와 피크, 음 밸런스 얘기부터 해보자. 확실히 위에서 말한 DJ의 말처럼 플랫한 음은 아니다. 저음이 강조된, 하지만 저음 강조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 저음이 센 것 보다는 중음과 고음이 약하다고 느껴진다. 저음 밖에 안 들린다고 하시는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어떤 기기를 들어왔기에 저음괴물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당장 고가 트랜듀서 중 인기 있는 트리플파이만 하더라도 저음의 세기가 훨씬 세고 양감이 많았다. 타격감도 더 세고 단단했다. SE530은 타격감보단 중저음 영역의 양이 PRO700을 넘어섰다. 저가형 중에서도 저음괴물이라는 ep390, 또 저음이, 아니 중저음이 좀 나온다는 es303도 솜을 착용할 경우 PRO700보다 양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같은 헤드폰 중에선 BOSE OE는 말할 필요도 없고, 소니의 XB 시리즈도 PRO700보다는 훨씬 저음이 많다고 느껴진다(그쪽도 고음이 안 나온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르겠지만). 특히 미니기기에 직결로 물릴 때는 부족할 정도로 저음이 들어가서 살짝 벨런스형의 소리를 내준다. 만약 위의 내용이 틀렸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PRO700과 요도바시에서 청음했던 두 제품이 사기인 것이 틀림없다.
고음이 안나온다는 경우도 그렇지만 내가 써왔던 트랜듀서 형, 특히 D-JAYS는 고음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녀석이였다. 하지만 사기 전에는 분명히 벨런스 형에 고음도 적절하다는 평이였는데 말이다. D-JAYS 말고도 SE420 레벨까지 고음에서 나에게 만족을 주는 트랜듀서는 본 적이 없다(er4 시리즈는 제외). 헤드폰 중에서도 여러 모델을 청음해 온 결과 10만원 후반대 그 이상이 아니고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역의 문제가 아니라 해상력의 문제이다. 저가 헤드폰의 고음은 마치 어딘가에 막힌 듯 들려왔다. 확실히 플랫한 다른 헤드폰에서 들을 수 있는 양의 고음보다는 작을 지 모르겠지만 양이 작다고 그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니까 말이다.
FR과 같은 광범위의 영역으로 가보자. 어떤 곳에서 측정한 FR그래프는 거의 쓰레기에 가까웠다. 플랫과는 거리가 먼 음색. 그런데 FR이 전부인가? 글쎄다. 한 분의 자료로는 고가 트랜듀서보다 문방구 이어폰 드라이버가 더욱 평탄하다는 웃긴 결과를 보여주었다. MX400과 HD600의 FR 그래프가 비슷하다고 치자. 그럼 과연 두 제품의 소리는 비슷한가? 딱 잘라서 아니다. FR그래프는 말 그대로 주파수 응답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주파수가 전부가 아니다. 주파수 응답이 평탄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좋은 소리라고 확답을 내릴 수는 없다. 반대로 주파수 응답이 평탄하지 않다고 그것이 무조건 나쁜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미친 3kHz 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3kHz 딥을 가진 제품이 이 PRO700 하나뿐이라면 욕을 실컷 얻어먹어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1~3kHz 영역은 주로 사람 목소리 부분으로 인간의 청각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나 헤드폰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음의 경우 이도의 공진효과를 받게 되는데 이 공진이 주로 3kHz 영역을 공진시키며 그 공진량은 거의 20dB에 다다를 정도로 크다고 한다. 왜 수 많은 제품들이, 그 중에서도 레퍼런스형이라는 고가제품을 제외하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이 3kHz 딥인데 이런 기기를 만드는 제조사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딱 3kHz 영역만을 감소시키겠는가. 그냥 플랫하게 내놓는 것이 더욱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건가?
사실 FR적인 얘기 말고도 고음 부분이 다른 제품들과 조금 다르다. 오테 착색이라고 하던가. 마치 고음역에 아주 약한 추가적인 하모닉스 성분이 들어간 느낌이 든다. 이미 모니터링 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 하지만 BBE 음장이 주로 하는 일이 이런 인공적인 하모닉스를 만드는 것. 그게 더 자연스럽다나 뭐라나.
그리고 멀쩡한 음까지 끌어내리는 착용감 쪽으로 가보자. 확실히 수치 상으로 보면 끔찍하다. 무겁고, 헤드밴드가 그저 단순하게 생긴 하나뿐이니까. 정말 솜털 같은 착용감을 원한다면 다른 제품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이건 확실히 무겁다. 그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
헤드폰은 착용 방법과 신체적 조건에 따라서 착용감에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 제품의 착용감이 아직까지 나에게 허용되는 이유라면 안착감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두상과 귓바퀴에 크기에 따라 많이 변하는 부분이지만 귓바퀴를 건드리지 않는 큰 유닛과 귀 주변을 조지 않는 약한 압박감은 좋다. 사실 압박감이 너무 없어서 착용 후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앞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 제품의 음의 성향은 어떠한가?
먼저 저음. 단순히 말해서 저음이 가장 좋다. 퍼지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을 달리는 저음. 묘하게 퍼지면서 잡아주는 저음이 비트의 종류에 따라서 그 구분을 확실하게 해준다. 어떻게 말하면 비트 영역의 묘사에 충실하다는 것. 저음의 양도 우리나라 K-POP의 경우는 약간 많을 지 모르겠지만 본고장의 J-POP을 들어보면 저음 양이 정말 적절하게 잘 맞다(혹자는 모니터링 헤드폰으로 우리나라는 7506을 쓰고 일본은 CD900ST를 써서 그렇다고 하더라). 주로 듣는 일렉트로니카나 트랜스 종류의 음악에는 더 말할 것 없다. 비트 묘사가 정말 좋기 때문에 비트 중심의 음악감상에는 이 가격대의 최강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음의 경우 보컬의 거리가 있지만 묻히지는 않는 편. 스테이징도 생각보다 넓다. DJ형 치고는 공간감이 상당히 넓다. 그 대신 보컬의 밀도감은 조금 부족하다. 사실 음악 보다는 음악 외의 요소가 더 잘 들리는 것 같다. 음원 편집을 해야 할 때 난 이 헤드폰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클리핑이나 디스토션, 그리고 좌우 벨런스 틀어짐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다른 이어폰들은 분명 소리는 좋게 들리지만 이런 노이즈들을 잘 잡아주지는 못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커널형보다 오히려 더 잘못된 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긴 하다.
고음은 부드럽다. 절대 쏘지 않으며 장시간, 고음량 청취에도 귀가 쉽게 피곤해지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그 만큼 찔러주거나 세밀한 묘사는 아쉽다. 다만 고음이 막히지 않고 초고음역대까지 올라가는 것은 좋다. 특히 16kHz 이상 영역 위의 묘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리시버들이 있는데 그쪽도 확실히 잡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쪽 부근의 영역은 착용법이나 또는 유닛 특성상 소리를 내도 귀가 소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현상이 적다는 것이다. 물론 레퍼런스급과 비교하면 곤란하다.
음 성향은 꽤나 어두운 편. 발랄한 음악의 표현력은 확실히 부족하다. 하지만 트랜스 음악과 같은 분위기라면 그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분리도는 그저 무난한 편. 음원이 헤드폰이라 그런지 커널 보다는 조금 퍼지는 느낌이 있어서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잘 없는 것 같다. 그 대신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감이 그것을 커버해주는 편. 한마디로 소리가 넓다.
무시무시한 차음성도 좋다. 착용하고 적당한 볼륨으로 감상하면 집안에서 낼 수 있는 소리는 거의 다 안 들린다. 버스 뒷 좌석에서의 엔진음과 같이 진동과 소리가 같이 들어오는 경우는 무리겠지만 왠만한 커널이 막는 정도는 다 막아준다고 보면 좋겠다.
사실 2년 이상 써오면서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 음은 어둡지, 고음은 찔러주지 않지, 바로 앞에서 올라오는 보컬은 없지. 그렇지만 다른 제품을 사기 위해 청음샵에 가 청음해보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남았다. 누군가는 오랜 사용에 의한 귀번인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 소리를 다른 녀석은 내 주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도를 벗어난 소리인 만큼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가 있다. 자신과 듣는 성향이 매칭하는 기기야 말로 최상의 조합이니까.
유난히 이 제품은 레퍼런스급의 고가 위주 커뮤니티에서 까이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 이 제품의 성격은 레퍼런스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리를 찾고 있을 것이고 제조사는 그에 맞추어 제품을 낸 것뿐이니까. 그러면 이 헤드폰의 음에 대해서 딱 한마디로 정의해보면, 본 제품을 직접 듣기 전엔 어떤 말도 믿지 마라. 그리곤 청음샵이나 주변의 물건을 빌려 주로 사용하는 미니기기의 음장을 플랫으로 설정하고 PRO700을 들어보라. 마음에 들면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내려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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