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즈 맞은 편에 위치한 라디오회관(라지오회관)은 거의 오타쿠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좀 오래 된 건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판도 조금 오래된 느낌이 나고 건물 안도 정돈된 분위기는 아니다.

구글 검색으로 퍼온 이미지.

라디오회관은 원래 예전의 아키하바라 분위기에 따라서 컴퓨터 부품이나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었으나, 어느새 이곳은 오타쿠들의 지름신 강림지역으로 불리는 무서운 곳이다. 옆의 게이머즈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게이머즈 같은 곳에서는 일반적인 신상품, 즉 새로 나온 DVD, CD, 라노베 같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라디오회관에서는 피규어, 동인 상품, 코스프레, 프라모델 등 조금은 매니악적인 취미의 물품들을 구비해 두고 있다.

이곳은 한 점포가 아닌 아울렛처럼 여러 점포가 모여 있다. 물건을 구매할 생각으로 아키하바라를 방문한다면 먼저 가게 위치정보를 알고 오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냥 아이쇼핑 분위기로 이곳을 들어왔다면, 아마 돈 안 쓰고 나가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는 족족 사주세요 라는 표정들의 상품들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피규어, 코스프레, 프라모델 등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랄까 너무 비싸다). 지나가다 보면 정말 미친 가격으로 보이는 물품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정말 모르겠더라.

내가 찾아간 곳 중 유심히 살펴 본 곳은 K-Books(케이북스). 애니 상품이라면 대부분 찾을 수 있다. 이름답게 매장 한쪽에는 동인지만으로 꽉 차있다. 코믹 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동인지들을 여기에서 조금 비싼 값에 판매한다. 적당한 것이 800엔, 비싼 것은 1000엔을 넘어간다. 이것도 서클의 유명도에 따라서, 작품희귀성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여기에서는 동인지들을 작품 명으로 분류한다. 즉2차 창작물인 동인지들의 오리지널 작품, 러키스타나 하루히 같은 애니 작품 명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물론 유명한 서클 동인지들은 따로 분류해두고 있지만(물론 코미케에 대해서 전혀 모르므로 맞는지는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작품 명으로 정렬해 두었다. 동인지들을 보면 정말 흥미로운 것이 서클마다의 품질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복사용지에다가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켜 판매하는 것도 있었던 반면에 나름 하드커버에 올 컬러를 자랑하는 책들도 있다. 정말 이런 것들이 팔릴까 싶어서 대충 훑어보기로 했는데, 그래도 너무나 많다. 정말 표지만 보고 지나가더라도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옆에서 열성적으로 고르시는 분 발견. 코드기어스 쪽의 작품을 모두 뽑아서 보고 있었는데, 표지에 CC가 있는 것이라면 모두 뽑아서 다른 손에 놓는 것이다. 와우. 여러 의미로 엄청난 분이었다.

조금 더 둘러보면 여러 상품들이 보인다. DVD라던가 CD라던가. CD를 고르고 있는데 어느 분이 와서 다짜고짜 하루히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네? 난 일본어가 능숙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대충 극장판이랑 TV 2기 방영판이랑 여러 이야기를 하던데 그냥 씹으려고 했으나 괜히 매너 없어 보일까 봐 그냥 "극장판 안 봐서 잘 모르겠네요" 하고 답해주니, 그래도 아는 만큼이라도 설명해 달라고 하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에이. 한국인 스킬 발동. "나 한국인이니까 잘 몰라요" 라고 하니까 순순히 물러나더라. 내가 특별한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런 분들이 있는 건가? 정말 당황스러웠다. 직원이 있었는데도 굳이 나 같은 모르는 사람에게 물었어야 했을까? 후에 내 친구에게도 물어보니 같은 사람을 만나서 여러 가지 대답해 줬는데 자꾸 깊게 들어가서 포기했다고 하더라.

한쪽에는 성우 팬클럽 용품들도 있었다ㅡㅡ 스티커라던가 수건이라던가. 그 밑에는 전설의 타키마쿠라(전신베개) 커버. 일단 가격이 ㅎㄷㄷ해서 차마 손으로 건드릴 수도 없었는데 포장된 모습이 전부 얼굴만 딱 내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화성인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보신 분들은 나노하의 페이트 등장 때 주인공이 내 들고 다니던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 사실 들고 다니는 것은 수위가 매우 양호한 거다. 미연시에서 따온 캐릭터들의 타키마쿠라는…… 뭐 그렇다.

결국 여기에서는 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냥 시험 삼아 동인지 딱 1권만 사서 나왔다. 가게가 센스가 있어서 봉지가 불투명한 비닐 코팅된 까만 봉지다. 내용물이 전혀 안 보이는 것. 라디오 회관 안에서 K-Books 봉지를 많이 보았지만 무엇이 들어있는지 단 한 개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