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나도 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한국판에서는 왜 "매니지먼트'라는 단어를 제외시켰는지 의문이지만), 줄여서 '모시도라'라고 하자.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다름아닌 지하철 광고였다.
당연히 우리나라 지하철이 아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 도쿄의 토에이 아사쿠사센이였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지하철이 아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 도쿄의 토에이 아사쿠사센이였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발견한 'もし高校野球の女子マネージャーがドラッカーの『マネジメント』を読んだら(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메니저가 드락카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라는 매우 긴 이름의 라이트노벨 광고.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판타지소설 광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동네는 이만큼 소비장르가 생활 속에 가득 파고든 곳이었다.
광고를 보면 알겠지만 국내판의 사양과 꽤나 다른 표지다. 일본에서 마케팅을 할 때는 모시도라를 라이트노벨로 분류했기 때문. 비슷한 예로 바케모노가타리가 있다. 라이트노벨에서 팔리는데 책의 구성은 영 라이트가 아닌, 그런 느낌.
이 작품을 또 다시 만난 것은 다름아닌 1년 뒤, 다시 도쿄를 방문했을 때였다. 아키하바라에 있는 요도바시 아키바의 상층에는 유린도라는 서점이 있다. 물론 애니서적도 판매하지만 일반 서점과 같은 분위기였다. 그곳의 카운터 맞은 편 유난히 내 눈에 띄는 책이 2권 있었다. 다름아닌 바케모노가타리의 후속작, 카부키모노가타리와, 바로 이 책. 모시도라였다. 순간 혹했으나 작년에 세로쓰기에 참패한 이후에다가 가격이 당시 1800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마존에서 1680엔하는 것으로 보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살짝 놓아두고 왔다.
그러던 사이에 애니가 방영되고, 모시도라도 꽤나 알려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영화도 제작되고 e북까지 나왔다.
그 후 우리나라의 동아일보사에서 정식출간하게 되었고 리스트에 올라와있던 책이라 다른 책들과 같이 읽어보게되었다.
일단 감상부터 말하자면 살짝 실망. 대실망은 아니지만 뭔가 심히 아쉽다.
먼저 원작 내용부터 따지면 초반의 스토리가 너무 얕다. 맨 후반부 여름대회에서는 소설과 같은 좋은 전개가 흘러갔지만 초반에는 문장의 깊이가 없고 너무 현 사실을 언급하는 투가 많았다. 내가 정말 경제서를 읽고있는건지 소설을 읽고있는건지. 중간중간 매니지먼트의 문구를 인용하는 부분이 자주 나오는데 그 부분보다 오히려 소설내용이 더 적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라면 가공된 수필과는 다르게 조금 더 드라마틱한 요소가 들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이 좀 많이 아쉬웠다. 다른 말로는 조금 더 스토리를 질질 끌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
두번째로는 위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부분인데 드러커의 구술한 내용이 너무 한번에 쏟아지는 듯 하다. 소설의 읽는 속도를 아주 천천히하지 않으면 머리속에서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 즉 한 챕터에서 '이노베이션(혁신)'이라는 주제를 다루면 이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과 구현방법, 실천방법 들을 조금 천천히 기재해도 좋을 듯 한데 너무 팍팍 튀어나오는 원칙들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원작내용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난 번역본에 대해 좀 더 질타하고자 한다.
일단 왜 일러스트가 없는건가? 라이트노벨을 살 때 기대하는 한 부분이 바로 일러스트이다. 위의 e북 게시물을 보면 알겠지만 분명히 책 안에 일러스트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라이트 노벨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쏙 빼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러스트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상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일본문화에 반감을 느낄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여튼 여느 소설과 다름없는 구성을 보고 설마 했지만 정말일 줄이야. 원작을 사두지 않은 것이 정말 아쉽다.
다음으로 따지고 싶은 것은 번역. 역자인 권일영 씨를 찾아보면 나이가 꽤 있으신 남자분의 사진이 나온다. 이 분이 중앙일보 기자를 하시다가 번역계쪽으로 넘어온 경우라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번역체가 작품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용 전달은 되지만 문장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이 너무 딱딱하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할 수 있지만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번역가는 그저 문장을 변환하는 것이 아닌 작품에 맞도록 문장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체적인 대화체가 마치 여고생이 아닌 듯이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은 차라리 라이트노벨 번역하시는 분들에게 맞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분이 바라보는 일본문학과 번역체는 왠지 이런 가벼운 느낌의 책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되는 이미지는, 특히 미나미와 유키가 병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아무리 읽어도 '여고생 토크'가 아니라 '월요일 정기회의'였다.
그리고 조금은 구시대적으로 느껴지는 일본어 성명표기. 국어맞춤법 상 원래 외국어에는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sack이란 단어를 '쌕' 이라 쓰지 않고 '색'이라고 쓰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케이치로(慶一郎)'라는 이름을 종종 듣는 나는 '게이치로'라는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장면도 사전에 등록되는 시대인데 이 정도는 안되려나?
여튼 종합하면 내용은 정말 무난했다. 특히 야구랑 아무련 인연이 없는 사람들도 크게 무리없이 감상할 수 있는 내용은 좋았다. 하지만 야구 골수팬들을 만족시키기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깊이가 부족한 스토리와 몰입을 방해하는 번역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제 원서를 사서 봐야할 때가 온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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