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친구녀석을 좀 재우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두 시 반쯤. 친구 녀석이 일어날 쯤에는 거의 오후 네 시가 되었다. 물론 나라고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린 것은 아니다.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디 가볼 곳을 생각해 봤는데 이미 상당히 늦은 시간이라 가려고 했던 시부야, 에비스 같은 곳은 무리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아키바… 음 아키바? 돈도 좀 남았겠다 싶어서 바로 콜 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까지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지하철은 한 역을 두고 다른 회사끼리 2번 타야 하는 고생이고, 돈은 돈대로 깨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면 믿을만한 것은 도보!
그렇게 되어 4시 반쯤 호텔을 나와 아키하바라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호텔이 있는 히가시니혼바시 쪽은 도심이면서도 도심이 아닌 듯한, 상당히 조용한 동네다. 관광객이 찾아올만한 스폿은 없고 있는 것이라곤 맨션과 작은 가게들. 아키하바라까지 걸어가면서도 차 지나가는 것을 잘 볼 수 없는 동네다. 일요일인데 말이지.
앞에서도 나온 칸다가와. 나름 운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물에 기름 같은 것이 떠다녀서 좀 더러워 보이는 것이 단점.
골목길인데도 표지판이 상당히 많다. 도쿄의 골목길 중에서는 일방통행길이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다. 구글맵으로 봐도 한쪽으로 화살표 표시가 되어있는 골목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JR아사쿠사바시역은 정말로 의외의 장소에 있다. 위로는 JR선이 지나가는데 아키하바라에서 치바쪽으로 가는 JR소부센의 첫 역이기도 하다. 볼 때마다 입구가 이런 다리 중간에 떡하니 놓여있으니 당황스럽고 신기하기도 하다.
주차요금 정산기. 사실은 차가 있는 것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하얀 선으로 표시된 주차공간마다 이런 기계가 하나씩 다 서있다. 지불방법은 차가 없어서 패스.
복잡한 구조의 도로. 꽤나 아키하바라에 가까이 왔지만 그래도 아키하바라 근처라는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게다가 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때는 일요일 오후였다.
아키하바라 도착. 유명한 다리다. 잘 모르겠다구?
앞에 보이는 많은 상점들이 아키하바라를 알리고 있다. 사실 나도 이 다리를 만나기 전까지 아키하바라는 언제 도착할 수 있을까 하며 고심했다. 의외로 아키하바라 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매우 조용하다는 것.
참고로 걸린 시간은 25분. 걸어가기에 적당한 거리라고 보인다.
우리는 여기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미친 듯이 쇼핑을 했다(앞 포스팅들을 참조바람). 다만 돈도 신나게 깨졌다. 많은 사람이 경고하지만 이 아키하바라는 계획적으로 금액을 소진시켜야 하는 대표적 장소라고 생각된다. 잘못하다가는 10만원 이상의 금액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고 CD샵에서 정신차리고 보니 음악CD만 7만원치를 사 들고 오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하길 바란다.
양손에 빵빵한 비닐가방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녀석이 발목의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1개역 거리를 전철을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은 공사가 끝나서 길 찾기가 쉬운 아키하바라역이지만 당시에는 한창 공사 중이었기에 노선들이 모두 일본어가 빡빡한 A4 용지에 적혀있었다. 겨우 경로를 찾아 돌아왔다.
JR아키하바라 역 벽면에서 발견한 광고. 애니메이션 + 모바일. 역시 일본, 아니 아키하바라다.
지하철에서 발견한 'もし高校野球の女子マネージャーがドラッカーの『マネジメント』を読んだら(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메니저가 드락카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라는 매우 긴 이름의 라이트노벨 광고.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판타지소설 광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동네는 이만큼 소비장르가 생활 속에 가득 파고든 곳이었다.
아까 나왔던 아사쿠사바시 역에서 내려 돌아오는 길에, 배도 출출할 겸 편의점에 들려보기로 했다. 멀리도 아니고 호텔 바로 밑의 그곳이다.
들어가보니 상당히 압도되는 크기에 놀랐다. 그리고 이상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일단 창가 쪽에는 도서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편의점보다는 훨씬 다양한 장르를 만날 수 있다. 성인잡지조차 편의점에서 파는 일본이니까. 가보니 정말로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미성년자에게 보여져서는 안 되는 표지들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카운터 쪽에 보니 희귀한 것을 판매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튀김". 그것도 직접 튀기는 것! 다시 말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을 튀길 때 사용하는 기계가 편의점 안에 있는 것이다. 상당히 진풍경. 찍어보고 싶었지만 알바생이 계속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뒀다.
과자 종류와 라면 종류도 상당히 많았는데 뭐 아는 게 있어야 선택을 하지. 너무나 많은 종류 때문에 도저히 하나를 고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나씩 다 사갈 수도 없는 노릇. 과자는 그만두고 라면 중에서 소바 면이 하나 눈에 띄어 하나 사왔다. 차후에 번외편으로 따로 다룰 계획이다.
음료수와 술 종류도 상당히 많았다. 자판기 설명 때도 언급했지만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차 종류도 많고 음료수도 다양했다. 하지만 눈에 특히 띄는 것은 술.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는 국산 맥주, 외산 맥주, 소주 등 해서 냉장고 한 칸 정도를 차지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캔맥주만 해서 1칸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거라곤 아사히, 삿포로 뿐. 게다가 아사히는 다른 맥주보다 30엔 정도 비쌌다. 그래도 아사히의 참 맛(?)이 궁금해 아사히 350ml 하나를 사왔다.
이날 사온 음료수들. 맨 먼저가 가장 유명한 이토엔의 '오이오챠'. 두 번째가 산토리의 이에몬 코이메다. 코이메(濃いめ)라고 하는 것은 한자 그대로 진한 맛을 뜻하는 것으로 사실 녹차의 진한 맛이라 마시면 상당히 쓰다. 개인적으로는 맞지 않았던 맛. 세 번째가 원조 포카리 스웨트. 포카리 스웨트가 일본음료수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이 아사히 350ml 생. 맛은 우리나라에 파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아사히 자체가 맛이 심심한 편.
이렇게 호텔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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