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용을 제 3자의 관점으로 보여줘!!”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면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싶다는 느낌이 너무나 컸다.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감상자세
하필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궁금해 했던 주제 중 하나를 끄집어냈다. 인간의 시각 성립 경로. 고등학교 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인간은 물체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그저 광원에 의해 반사된 빛을 시세포가 받아들여 화학&전기적인 신호를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그 신호를 분석해서 판단해 사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알고 보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인가. 그 과정이 복잡하면 복잡해질수록 왜곡될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시각에 대한 기계적, 전자적인 왜곡은 다른 영화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주제이다. 많은 영화나 소설, 애니가 시각의 왜곡, 조작, 악용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 하기 힘든 일을 하기 위한 시뮬레이터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과연 시뮬레이터 속에서 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환상인 것인가. 과연 시뮬레이터 속에서 사과를 먹고 느끼는 오감과 실제로 포만감을 가저다 주고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면 그것은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철학 강의를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자기의 손에 불덩이가 올라와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 낼 것인가. 인간은 그저 각각의 감각세포가 보내는 수많은 감각 중 자신이 원하는 극도로 적은 수의 감각만을 뇌는 해석하며, 그 해석조차 자기 마음대로 해버린다는 것이다. 상식이라는, 관념이라는 이런 기존에 존재하는 지식들로 가득 찬 뇌가 손 위의 불덩이는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진행되는 1인칭 전개의 스토리는 도저히 믿으려고 해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간을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1화 처음부터 나오는 피규어 속 인물.
물론 쉽게 망상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스토리가 진행되어 갈수록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들 중 그 망상이 과연 어디까지 적용되는 것이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망상인건지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내가 제 3자의 입장으로 들어가 상황을 지켜본다면 난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몸이 느끼는 것만 인식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 지식 말고도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이다. 과연 우리는 사람을 어디까지나 믿을 수 있을까? 내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존재 자체가 거짓이라면? 상호간의 관계를 열어 버리다 배신을 당하면? 상호간의 관계를 닫아 버리다 상처를 준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이런 스토리를 이끌어주는 주인공의 연기도 좋았다. 얼마나 연기가 좋았으면 주인공의 찌질한 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정말 죽도록 패주고 싶어질까? 여려 말이 많은 스쿨데이즈 주인공도 이런 느낌이 있었다. 죽도록 패주고 싶은 느낌. 목소리 톤이 너무나 싫었지만 마음에 드는 경우라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경우일 것이다.
스토리는 아무래도 게임과 같이 멀티앤드가 아니고 하나만의 루트를 골라야 하는 경우라 어느 정도 예상하던 결과가 나왔다. 정말 처음 6화 정도까지는 넋을 놓고 멍한 상태로, 달리 말하면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온갖 머리를 굴려도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후반부가 되면서 흐름이 하나로 줄어드는, 조금 아쉽지만 결말을 짓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내용이 되었다.
이야기의 배경 자체가 시부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시부야의 느낌이 너무 잘 재현되어 있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듀라라라의 이케부쿠로, 도쿄 메그니튜드 8.0의 오다이바 등 현실에 가까울수록 더욱 신기한 느낌과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림체는 마치 어디에서나 있는 미소녀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흔히 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딱 오해하기 좋을 정도다. 다만 내용에는 최근 애니처럼 과한 노출이나 무리한 야한 전개를 택하지 않은 것이 조금 차이가 나는 점이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연출. 조금 더 스토리를 전해 줄 독특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스토리가 너무 어려워 끝까지 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시리어스한 전개로 흘러가니 말이다.
중간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부족한 것도 그렇다. 조금 재미가 붙으려고 하면 바로 어려운 내용과 심각한 상황들이 지나간다. 특히 후반부에는 스토리대로 흘러가다 보니 감상자의 긴장상태를 엎어 줄 무언가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방영하는 애니는 머리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감상이 가능했던지라 이렇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작품을 간만에 만난 것 같다. 그만큼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었고, 재미와 생각거리를 남긴 작품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은 과연 현실인가, 아니면 망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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