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쪽에서 일을 하다가 인원부족으로 최근에는 민원대로 옮겨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업무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져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네요.


1. 절대로 말 안 하려는 사람들.


여성분들, 특히 아주머니 분들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남자 3~50대 분들은 동사무소로 들어와서 절대로 말을 묻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서류양식이 있는 코너로 들어가서 뭘 적어야하나 열심히 고민하십니다. 그런데 90% 이상은 여기에 내가 서류가 없다는 것을 깨닫죠. 그래서 아무거나 적어보자라는 식이 40% 민원대로 오시는 분들이 60% 정도 됩니다.

그래서 민원대로 오시면 우리에게 방법을 묻느냐? 또 그건 아닙니다. 봉투나 광고지에 내가 필요한 서류를 막 적기 시작합니다. 광고지는 괜찮은데 아까운 봉투를 낭비하길레 제가 이면지를 8등분해서 민원대에 몇 군데 올려놨습니다. 그러면 또 열심히 그것만 쓰십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이라구요. 


물어보면 친절히 답해드리는데 왜 속어로 엉뚱한 짓만 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2. 규정따위는 씹어주시는 사람들


동사무소에서 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서류는 뗄 수 있는 권한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신청서, 위임장을 작성하여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자기 신분증을 들고와야 뭔 얘기가 되는데 막무가내로 와서는 서류 떼달라고 합니다.


A : 등본 떼 주세요

B : 신분증 주세요

A : 안 가져왔는데

B : 신분증 들고 오셔야 합니다.

A : 아 집이 멀어서 그런데 좀 해주세요.

B : 안 됩니다.

A : 그러면 전에 뗀 등본(+인감, 차량등록증, 가족관계등록부, 건강보험증 등등) 보여줄께.

B : 그거로는 안 되고 신분증 들고 오셔야 합니다.

A : 그러면 내 전화해서 바꿔줄테니(도대체 누굴?) 좀 떼 주세요. 급합니다.

B : 신분증 들고 오세요.

A : 아들내미(+딸내미, 와이프, 아버지, 어머니 등등) 신분증으로 안 됩니까?

B : 본인 신분증 들고 오세요

A : 그럼 내가 떼고 신분증 나중에 보여드릴께.

B : 지금 들고오세요.

A : 팩스로 복사본 보내도 안 됩니까?

B : 플라스틱 신분증 원본 들고 오세요.

A : 지문인식으로 안 됩니까?

B : 안 됩니다.

A : 아참 더럽네 그냥 좀 떼주면 안 됩니까?

B : 네


뭐 하루에 4번 정도는 벌어지는 실랑이랄까요? 이젠 지겹습니다.


그리고 관할 동사무소로 가라는 말. 지금 당장 안 된다는 말(팩스민원) 그것도 싫어하더군요. 땡깡 부려도 어차피 안 될 꺼 괜히 피곤하게 해주시는 분들.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될 거면 진작 해드리고 남았습니다.


물론 직원들이 실수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수료계산 잘못 할 수도 있고 서류가 한 장 덜 나갈수도 있구요. 우리도 사람입니다. 간혹 가다 실수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는 철저히 사과합니다. 이름 적어가서 고발, 고소하신다고 하신 몇몇 분들, 제가 본명 다 적어드렸습니다. 당연히 고소 안 왔죠.



3. 횡설수설 하시는 사람들


이건 나이 많으신 분들이 주로 발동하시는 스킬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귀찮다고 할 수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잘 모르시니 아실 때까지 설명해드려야하는 게 저희 의무입니다. 최근에 디지털 TV 전환 때문에 더욱 빈번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흔히 이런 레퍼토리죠.


A : 초본 한 통 떼 주쇼.

B : 초본 한 통요?

A : 어. 그거 떼면 우리가족 다 나오지?

B : 초본은 원래 혼자 나오는 서륩니다. 다 나오실라고 하면 등본 떼보세요.

A : 그럼 등본 떼 주소.

B : 등본 조회해보니 혼자 계시네요

A : 등본은 혼자지. 근데 살긴 다 살아

B : 그럼 가족관계 떼가셔야겠네요

A : 그럼 우리가족 다 나오지?

B : 네 다 나옵니다.


설명을 잘 못 알아 들으시지만 저희는 있는 말 없는 말 최선을 다 합니다. 덕분에 사투리가 많이 늘었습니다^^



4. 뻔뻔하게 불법을 저지르시는 사람들


특히 전입신고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전입신고란 내가 거주지를 이동해 실제로 거주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신고인데, 실제로 안 살면서 전입신고를 해달라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자는데 공장에 전입신고를 하는 경우

* 실제로 아파트에 같이 살고있지만 농촌 지원금 등으로 다른 곳으로 허위전입하는 경우

* 아파트에 실거주가구는 하나이나 동일 세대에 따로 전입을 하는 경우

* 미성년자를 보호자 없이 단독세대주로 만드는 경우


그러면서는 좀 해달라고, 사정을 좀 봐달라고 하는 사람들. 자기내들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 뻔뻔하게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참 헛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그렇다고 면상에다가 "이거 불법인거 알고 있냐, 신고하겠다"라고 말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웃깁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취급 당한다더니 이런 식으로라도 세금 덜 내거나 이득을 받고 싶은지 묻고 싶습니다. 웃기지도 않네요.



5. 등본은 꼭 등본 코너에서 떼셔야된다는 사람들


구청에서야 보는 업무가 상당히 많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큰 민원대에 분야별로 뗄 수 있는 서류가 나눠저 있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동사무소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특히 행사지원이나 재난안전관련 동원으로 자리를 비울 가능성이 큰 부서이기도 하죠.

그래서 민원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동사무소에서 발급가능한 거의 모든 서류를 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PC에서 그 프로그램들을 모두 켜놓고 있죠. 


가장 많이 발급하는 서류인 '인감, 등본, 원초본, 가족관계, 지방세 납세, 전입세대, 출입국사실증명" 

모두 한 자리에서 발급이 가능합니다.[각주:1]


다만 발급의 효율성을 위해서 구분하는 정도이고, 한 칸이 유난히 밀릴 때는 먼저 오신 분의 연관된 서류업무를 같이 처리해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서 먼저 필요하신 서류를 모두 말씀해달라고 하고 아니면 적어오거나 구비서류 안내문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 정도는 다 기억합니다.


그런데 꼭 융통성 없이 등본 코너에서 등본을 떼시겠다고 계속 서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쪽으로 오세요", "서류 어떤 거 발급하세요?" 물어봐도 대꾸도 안 하고 꿋꿋하게 서 계십니다. 심지어는 출장간 직원의 빈 창구에서 계속 서 있다가 "여기 직원 없나요?"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이라구요. (2)


규정에 대해서는 무리지만 업무처리방법에는 개개인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선생님 편하라고 여러가지 물어보는 것이지 뭐 우리들 좋으라고 말 걸겠습니까?


그 외 관련글들




아직은 대선후보자홍보기간이 아닌지라 관심이 덜 할지 모르겠지만 동사무소는 이미 대선준비체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대구는 얼마 전까지 열린 전국체전때문에 동사무소는 완전 전쟁터가 되어버렸죠. 복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일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1. (동의 환경이나 크기, 인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