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C75 VS KSC35


코스라는 회사는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회사일 수 있습니다. 이 회사가 과거에는 전설적인 헤드폰 제조회사였다는 사실을 지금은 거의 알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아래 위키글의 1번 항목만 읽어봐도 이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 회사였는지는 알 수 있을것입니다.


https://namu.wiki/w/KOSS?#s-1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많은 이들이 가성비의 제왕으로 인정한 포타프로, 그리고 클립폰인 아래 사진으로 나온 KSC75가 있습니다. 

http://www.koss.com/~/media/Images/Koss/Headphones/CLIPS/KSC75%20Stereophone/KSC75.jpg


네. 무슨 말을 하실 지 압니다. 이 못생긴 클립폰이 그렇게 대단하냐구요? 일단 10만원 밑 제품에서는 성향만 맞다면 적수가 없는 제품으로 추천되고 있습니다. 이 가격(2만원 초반)에 이런 해상력, 공간감 어디 가서도 못 얻습니다.

이 제품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은 못 생긴 디자인과, 그리고 장시간 착용시 귀가 매우 아파진다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클립을 제거하고 헤드밴드를 장착하는 개조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 보급형(?)으로 나온 KSC75보다 상위 기종이 있습니다. 바로 KSC35로 지금 소개할 제품이죠. 이 제품은 한 때 단종되었다가 유저들의 수많은 요청에 의해 다시 소량생산중인 녀석으로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판매중입니다. 가격은 심지어 2배 이상인 44.99달러[각주:1]에 책정되어 있죠.


과연 이게 KSC75에 비해 2배의 가격을 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구매를 보류하고 있었지만 저번 사이버 먼데이에서 40% 할인쿠폰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3만원 조금 안 되는 금액으로 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패키지 없는 패키징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KSC35는 벌크포장이 공식포장입니다. 아주 예전 단종되기 전에는 패키지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벌크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문하면 이렇게 옵니다. 정말입니다.


본체가 성의없이 타이로 말려있고, 제한적 평생보증 보증서, 공용[각주:2]으로 사용되는 파우치 하나. 이게 끝입니다. 요즘은 싸구려 몇 천원짜리 이어폰을 사도 이쁜 포장이 따라오는데 이 정도면 무슨 자신감인가 싶죠.


여담이지만 KOSS사의 어떤 헤드폰[각주:3]을 사도 9달러 넣어서 수리 맡기면 수리되어서 옵니다. 19.99달러 제품이든 999.99달러 제품이든 말이죠. 물론 국내에서는 의미가 거의 없는 제도이긴 하지만요.



유닛 디자인은 위 75 보다는 멀쩡해보입니다. 전 이런 디자인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고급스럽진 않지만요.


플러그랑 스플리터 디자인은 웬만한 저가형 뺨칩니다. 플러그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간간히 들려오지만 그렇게 약한 재질이라고는 생각되진 않습니다.



사용상의 특이성


일단 75보다는 착용이 편합니다. 클립이 얇아서일까요. 많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착용 시 귓바퀴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클립형 이어폰의 한계입니다.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매우 평범합니다. 선은 잘 꼬입니다.



소리


흔히 플랫으로 널리 알려진 HD600, ER4S 등의 제품들은 '레퍼런스'라 불리며 의미 그대로 '기준'이 되는 평탄한 소리를 내줍니다. 플랫한 소리를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녀석의 소리는 반응속도 느리고 양이 많은 저음, 날카로운 고음, 상대적으로 빠지는 중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물론 10만원 이하의 절대다수의 제품은 이 제품보다 못하다는 게 사실이지만...) 


하지만 플랫한 녀석들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평가로 '재미없다'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습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자극을 추구하고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플랫에 약간의 EQ를 첨가하는 스타일인 저도 가끔씩은 그런 거와 무관하게 그냥 음악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음향기기를 비교해보고 따지고 하는 지금의 나가 아닌,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집의 전축으로 들었던 음악, 길거리에서 들었던 음악들. 소리의 질이 아닌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음악을 들었던 무지(無知)했던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말이죠.


KSC35에 대한 저의 평가는 '신난다! 재미있다!' 입니다. 이 녀석은 음악을 그저 즐기고 싶을 때 딱 좋은 소리를 내줍니다. 트랜스를 틀면 신납니다. 클래식을 틀면 차분해집니다. 락을 틀면 뛰고 싶어집니다. 보컬곡을 틀면 목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KSC35는 소리에 적절히 양념을 발라주게 됩니다. 착용 후 음악을 튼다면 음악을 데이터가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해상력은 적절합니다. 고가의 레퍼런스같이 샅샅히 잡아주진 못하지만 웬만한 소리는 다 잡아줍니다.

공간감은 오픈형 구조 덕인지 웬만한 헤드폰보다 좋은 스테이징 크기를 보여줍니다. 저음 잔향이 길어서 그런지 음이 오래 퍼저나가는 인상도 받게 됩니다. 클래식이나 인스투르멘트 음원에서 좋은 느낌을 줍니다.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저음응답이 느립니다. 속도가 필요한 음악에서는 저음이 못 따라와서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고음이 쏘는 건 이해하는데 계속 들을면 피곤해집니다. 클립이 아프니 그 전에 귀에서 빼게 되겠지만 높은 볼륨으로 장시간 청취 시 귀가 상당히 피곤해질만한 소리입니다.



소리로 비교하는 75 VS 35


KSC35(이하 35)는 KSC75(이하 75)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된 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역부분 전체가 두리뭉실하게 부풀어있던 75에 비해 35는 저역이 절제되어있으며 해상력 역시 약간 상승한 느낌입니다. 그로 인해 중음 영역도 저음에 묻히지 않고 그 성격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고역 역시 훨씬 더 뻗어줍니다. 공간감이나 전반적인 해상력 역시 75보다 더 높은 레벨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소리 특성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두 제품 다 V형에 가까운 소리이며, 중고음 부분의 소리질감이 거친 편입니다. 극저역은 클립형 특성 상 빠지는 느낌이 강합니다. 



기회만 된다면 KSC35를 사라


제 결론은 단순합니다. 


이건 사세요. 

75를 살 바에 35를 사세요.

특히 플랫한 고가 리시버들을 소유하신 분들이라면 덤으로 하나 사세요.


제품 자체만 놓고 보아도 좋은 녀석이고 누가 들어도 좋다는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향기기에 무관한 분들은 75와 35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디자인만 허용된다면 비싼 35를 살 필요는 없죠.


플랫한 리시버를 쓰는 분들에게 쓰던 걸 버리고 이걸 사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FR 다 필요없고 재미있는 음악이 듣고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방 안 어딘가 처박아두었던 이 녀석을 꺼내들고 단순히 음악을 즐겨보셨으면 합니다. 성능에서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분명 음향기기에 빠지기 전 아무것도 모르고 들었던 음악들에서 찾을 수 있었던 즐거움과 감동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1. (KSC75의 공홈 가격은 19.99불입니다) [본문으로]
  2. (포타프로, 스포타프로 등 많은 제품 포장에 동일한 파우치가 들어가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제한적 평생보증 제품만 해당됩니다만, 거의 모든제품이 해당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