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잠자리에 민감한 편입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같은 다인실이나 캡슐호텔 같이 잠자리가 불편한 곳이면 쉽게 잠을 설치곤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혼자 가게 되었지만 잠자리만은 돈을 투자해서 괜찮은 곳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호텔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가격/시설/조식제공여부 등도 있겠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역과의 접근성 입니다. 일본은 교통비를 무시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관광지나 가려고 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는 걸 추천합니다. 게다가 짐이 많아질 경우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도 보통 신경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덕질여행을 테마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키하바라 주변에서 숙소를 잡기로 했습니다. 아키하바라 쪽을 검색하면 보통 우에노나 칸다, 료고쿠, 오차노미즈 등 주변 지역이 검색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놓고 호텔 이름에 아키하바라 역앞으로 표기되는 호텔을 발견했습니다.


http://www.apahotel.com/hotel/shutoken/25_akihabara-ekimae/


JR아키하바라 역에서 도보 1분! 도쿄메트로 아키하바라 역에서 1분! 무시무시한 접근성입니다. 전에는 역에서 10분 정도는 껌으로 걸었기 때문에 이 수치만으로도 눈 돌아가기에 충분했습니다. 바로 비행기 예약일에 맞추어 예약했습니다. 

이상하게 쟈린넷에는 해당 날짜에 예약이 안 된다고 떠서 조금 더 비싼 아고다에서 예약했습니다. 수수료 포함 1박 9만원 정도 줬는데 싼 가격은 아닙니다. 거기에 1인 숙박이었기에 2인 숙박 시에는 더 저렴해질겁니다.


여담이지만 APA 호텔은 아픈 호텔이 아니라 일본내에서 호텔/멘션 건설을 중점으로 하는 그룹입니다. 당장 구글에서 아파 호텔을 검색하면 많은 지점이 나옵니다. 도쿄도 내에만 40개가 넘는 지점이 있죠. 주로 소규모 여행/비즈니스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듯 했습니다.




호텔이 역에서 얼마나 가까웠냐면 당장 호텔 앞 광경이 이랬습니다. 요도바시가 눈 앞에 보이고 편의점도 바로 앞에 세븐일레븐이 있고. 접근성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습니다. 덕질을 해서 물건을 양손 가득 사오더라도 금방 호텔로 가지고 올 수 있었죠.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치받아 올라갔습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호텔이 12층까지 있더군요. 



방을 처음보니 베게가 2개 있는 더블베드가 있는 걸로 봐서는 원래 싱글룸 자체가 2인까지 숙박이 가능한 형태로 보였습니다. 전형적인 일본 비즈니스 호텔의 광경이었습니다.



큰 사이즈의 TV. 40인치로 추정되는 크기였는데 보통 이런 비즈니스 호텔의 TV는 모니터 크기쯤 되는 작은 걸 갖다놓은 것만 봐서 살짝 놀랐습니다. 덕분에 심야애니도 즐겁게 감상.



키는 터치식 카드키입니다. 디지털 도어락처럼 접촉하면 문이 열리는 방식입니다. 심지어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키를 대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여름 일본여행에 가장 중요한 에어컨. 방크기에 비해 냉방능력이 좋아서 5분만 풀가동시키니 추울 정도로 성능이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창문은 열 수 없는 구조에다가 불투명처리가 되어서 전망을 감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본 구비된 집기. 냉장고는 최대로 올려놓지 않으니 냉동실이 잘 안되더군요. 냉동실에 가리가리군을 넣어놓고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스크림이 녹아있는 상황... 대신 매일 포카리 젤리를 냉장고에 하나씩 넣어주더군요. 맛은 그냥 포카리맛 젤리였습니다.

그리고 서랍엔 호텔 이름으로 된 만화책이 있는데 무려 프론트에서 판매중ㅋㅋㅋ

욕실.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일본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 당황하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에 식수를 받아 마시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음료수라고 적혀있습니다. 물론 호텔측에서 생수를 매일 1병씩 지급해줘서 그걸 마셨지만요.



이 선까지 물을 받아쓰세요 라고 붙혀놨던데 저 선까지 받아도 다리가 다 안 잠겼다는 슬픈 사실이...


딱히 흠 잡을 만한 건 하나도 없어서 매우 만족하고 있던 찰나, 화장대 위의 전구가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이하 내용은 당시 트위터에서.



제 일본어가 짧았던 것도 있지만 직원이 너무 공손하게 대하는 바람에 일 처리에 지연이 생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본 의도를 숨기고 말을 빙빙 돌려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문화가 다르다는 게 이런 것일까요? 

결국 직원이 '일단 전구를 갈아보고 상황을 지켜보죠' 해서 전구를 갈았는데 상태가 좀 나아져서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 전공지식을 동원하면 이 문제는 형광등 방전 조건과 연관되는 것이라 약간의 트릭을 쓰면 개선이 가능한 상황이라 방도 못 바꿔준다 하니 대충 해결하고 나머지는 별 문제 없이 지냈습니다. 이것만 제외하면 모든 게 완벽했을텐데 말이죠.


대충 에어컨으로 몸을 식히고 일요일의 아키하바라 거리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덕질할 시간은 많지만 그래도 일찍 왔으니 바로 나가봐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