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의 HD6000 사용기[링크]에서도 그렇고, 청음샵 청음기[링크]에서도 그렇고, 아니죠. 꽤나 예전부터 전 레퍼런스급 헤드폰에 대해서 갈망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안샀냐 물으면, 돈이 없어서, 라는 답이 가장 큰 핑계였습니다. 3,40만원이라는 가격이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아주 큰 금액이니까요. 하지만 계속된 청음으로 전 레퍼런스 급을 사야한다고, 살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HD600을 사기에는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번 청음기에서도 언급했듯 Fidelio X1 모델이 꽤나 괜찮은 소리였고, HD650과 비교해봤을 때 이 정도면 레퍼런스라고 부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정적으로는 HD600과 X1이 가격차만큼 성능과 음색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던 차에 친구에게 빌린 돈의 일부를 회수하고, 폰을 몇 개 팔고, 장학금 좀 타고나니 통장에 잔액이 생겼습니다. 그래, 언젠가 지를 거라면 지금 당장 지르자! 해서 지르게 된 필립스 Fidelio X1입니다.


패키지 언박싱




박스가 꽤 큽니다. 헤드폰이 꽤 크기 때문이죠. 



저번에 아마존에 이 헤드폰이 싸게 풀려서 관세 포함해도 최저가보다 몇 만원 싼 적이 있었는데 그걸 놓친 게 한이군요. 지금은 정품 구매가 더 쌉니다.


구성품으로 6.3파이-3.5파이 변환잭, 3m 케이블, 선정리 클립이 있습니다. 파우치나 여분패드 이런 거 없습니다.



본체와 케이블이 보입니다.

눈치채셨을 지 모르겠지만, 이 제품은 케이블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3.5파이 연장선을 사용하며, 만약 단선이 되더라도 선만 사서 갈아주면 수리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본 6.3파이와 변환잭 구성인데, 이건 아래쪽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포장을 들면 나머지 케이블과 설명서가 보입니다. 다행히 한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자인




이렇게 생겼습니다.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았다는데, 별로 예쁘거나 간지나지는 않습니다.


패드는 저렇게 보여도 일반적인 천패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어패드가 본드로 고정되어있어서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뭐 내구성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개조가 어려울 뿐이죠.

패드는 초기라서 그런지, 원래 그런건지 청음샵 제품도 그렇고 탄력이 센 편입니다. 장시간 착용 시 귀 주변부가 조금 아플 수도 있습니다.


금속 테두리 때문에 싼티는 나지 않지만 가죽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뭔가 애매한 느낌입니다. 헤드밴드는 2단 구조로, 맨 위 갈색 테두리는 고정되어 있고, 아래 천 밴드가 착용시 늘어나면서 고정됩니다. 근데 별로 편한 것 같지는 않군요. 오디오 테크니카의 에어윙 서포트 정도가 아니라면 이런 구조라도 편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http://postfiles2.naver.net/20100111_225/catha8411_1263188453355JxUb1_jpg/b2_catha8411.jpg?type=w1


위 사진이 오디오테크니카의 에어윙 서포트입니다. 저게 편하긴 엄청 편하죠.


케이블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직조 케이블입니다. 넉넉하게 길고, 단선 방지를 위해 스프링 작업이 되어있으며 플러그도 금속 재질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일반 플레이어에 연결할 때는 저렇게 긴 변환어뎁터를 장착해야 합니다. 만약 스마트폰에 연결하면



대략 이런 느낌이죠. 아주 툭 튀어나옵니다.


너무 거슬립니다. 개조하기에는 아깝고, 쓰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외국 사이트에서 기본 케이블이 이상하게 저항값이 높다는 말도 있어서 3.5파이 케이블을 자작하여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기본이 1~2옴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작케이블은 0.18옴의 수치를 가집니다. 기분탓이겠지만 음이 더욱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사용시 특이점


제 귓바퀴가 작은 것인지, 아니면 이어패드 내부 공간이 큰 것인지, 착용하는 위치에 따라서 음색이 마구마구 변합니다. 헤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고음성향, 플랫, 저음성향까지 마음대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근데 뭐가 진짜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장시간 착용 시 헤드밴드나 하우징과 닿는 부분이 썩 편하지는 않습니다. 압박이 크진 않은데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헤드폰이 꽤 무겁기 때문에(레퍼런스 제품들이 다 무겁긴 하지만) 헤드폰 무게에 적응이 안 되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구매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레퍼런스 제품들이 그렇지만 헤드폰이 접히지 않습니다. 즉 보관하기가 참 애매한데, 헤드폰 걸이를 하나 구매하시는 것이 도움 될 것입니다. 그냥 어디에 처박아두거나 책상 위에 올려두기에는 정말 크고 눈에 띄거든요.



소리

 

저번 이어폰샵 청음기에서 적은 내용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 내용을 갖고오기로 하죠.


헤드폰 음색의 레퍼런스로 잡고 있는 HD600에 필적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쏘지 않고 플랫하면서 분리도가 좋은. 패드가 조금 탄력이 강하긴 했지만 나름 편했고, 소리 역시 레퍼런스로 쓸 수 있을 만큼 괜찮았다.


딱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면 저음이 살짝 부풀러오른 곳이 있다. 150~250 Hz 부분에 약한 피크가 존재하는데 이게 살짝 신경쓰다보니 계속해서 거슬렸다. 만약 이 제품만 계속 사용한다면 별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니 저 약한 피크가 내 발목을 잡아버렸다. 특히 HD600에는 저런 피크가 존재하지 않아 더욱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구매 후 계속해서 사용해온 이 녀석의 평가는, 그냥 레퍼런스입니다. 레퍼런스 급이 아니라 레퍼런스입니다. 위 평가가 지금 역시 변하지 않으며, 여기에 추가적인 내용만 더 적겠습니다.


스테이징이 생각보다는 넓은 편입니다. HD600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가 스테이징이 의외로 좁다는 것입니다. 앰프매칭 없이 직결, 또는 특색 없는 앰프에 물리면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X1의 경우 헤드폰보다는 스피커를 의식한 튜닝을 한 듯 음이 확산되는 형태가 좋습니다. 대부분의 곡에서 정확한 거리감을 표현합니다.

다만 K701 등과 비교하면 스테이징 크기 자체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색이 조금 어두운 편이라서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겠네요.

또한 음의 누설이 심합니다. 덕트가 조금만 막히면 음색이 바뀝니다. 비교적 좁은 음색이었던 HD600이나 기존에 사용하던 DT440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었습니다.


저음이 부풀어오른 현상에 대해서 계속 탐구해봤는데, 이 역시 헤드폰이 아닌 스피커의 플랫을 구현하다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프상으로 플랫하다고 하는 ER4와 HD600의 저음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HD600와 X1도 음원에 따라서 저음의 양이 꽤나 차이나는데, 신기하게도 X1의 저음은 스피커의 저음 특성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래서 저음이 많은 곡은 조금 강조되는 듯한 저음이, 저음이 적은 곡은 저음이 빈다고 느낄 정도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음반 제작자의 프로듀싱에 따라서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DT440에서도 이러한 느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X1은 그 정도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다만 저음이 작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음이 분명히 꽤나 존재감있게 들립니다. 간혹 조금 심할 정도로 답답하게 저음이 들리는 곡이 있는데 덕트를 살짝 더 막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장르매칭의 경우, 보통 리시버의 급이 높아질수록 클레식으로 비교하는 분들이 많은데 왜 그러는지 조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즐겨듣는 일렉트로닉 장르에서도 분명 좋은 소리를 보여주지만 해상력(분리도)를 제외하고 기존 기기들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편성 오케스트라 곡부터 4중주, 솔로까지 실제 악기를 녹음한 곡들은 정말 놀라운 성능차이를 보여줍니다. 기존 기기들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졌달까, 생동감있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레퍼런스다운 소리를 내주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G선상의 아리아부터 여기저기(あっちこっち) OST까지. 누가 듣더라도 "아 이건 정말 좋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 글솜씨가 나빠서 더 확 와닫는 표현이 없네요ㅠㅠ



정리


무리하여 구매한 건 사실이지만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매 첫 날부터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기존 음악에 대한 재해석을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새삼 듣게되니 옛 추억에도 잠기게 되었구요.


리시버의 차이, 그리고 특색의 지속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아마 지름신은 끝없이 내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전 더 이상 헤드폰을 구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밀폐형으로 HD6000이, 오픈형으로는 이제 X1이 담당하게 되었으니까요. 헤드폰의 성능보다는 음악 자체를 듣고 즐긴다는 의미에서, 전 이 이상 올라갈 필요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헤드폰에 적응이 되고 후에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리면 더 올라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 몇 년간은 이 헤드폰으로 만족하며 새로운 리시버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만족스러운 인이어를 찾았고, 만족스러운 헤드폰을 찾았습니다. 스피커는 포기했구요. 그럼 이제 오픈형 이어폰을 찾으러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