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뻗어버렸다.

참고로 내 친구에 대해서 말하자면 수능 준비 기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다 저혈압으로 쓰러진 것으로 우리 반에서는 유명하다. 내가 이틀 동안 무리하게 끌고 다녔으니 무리도 아닐 듯. 아직 가고 싶은 데도 많았지만 다음 혼자 오던가 또는 체력 강한 친구들끼리 오던가 해서 조금 더 빡시게 돌기로 하고 오늘은 느긋이 구경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어난 시간은 6시. 2월달의 6시라고 하면 상당히 빠를 것 같지만 이 동네는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아침식사가 6시 반부터라는 것을 생각해(8번 글 참고) 딱 맞춰 내려가면 아무도 없어서 사진 찍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지만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는 것. 그런데 의외로 호텔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호텔에서 숙박하는건가? 양복을 입고 있는 분들도 있어서 도저히 여행 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비즈니스 호텔답게 비즈니스 중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서양 쪽의 외국인들이 남은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은 단지 주먹밥 2개랑 빵 하나 정도만 들고 (19번 글 참고) 자리에 앉았다.

잠깐 이어질 에피소드를 위해서 자리설명을 하자면 나 바로 옆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40대 아저씨, 그 옆 맞은편에는 미국인 아저씨 한 분. 나 앞의 빨간색 두 원은 발음상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두 분이 있었다.

조용히 국물이 될 미소국 하나를 가져와 주먹밥을 까먹고 있는데, 앞에 있는 여성 두 분은 영어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워낙 조용조용히 얘기를 해 무슨 말인지는 잘 못 알아 듣고 있던 찰나, 왼쪽의 외국인이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난 미국인이고, 9박 10간 여행계획으로 도쿄 쪽으로 놀러 왔는데 이틀 동안 돌아다니고 나니 도저히 놀러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일본에 대해서 심하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 아저씨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영화 속에서나 들을 수 있던 심한 욕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애꿎은 나 옆의 아저씨에게까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해보니 어떠냐, 볼 게 뭐 있더냐, 당신 한국인이지(이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등등… 다행히 옆에 계시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한국인이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렸다)가 영어를 조금 해서 대충 대꾸해 주었다. 다만 별로 동의하지 않는 말투라서 외국인을 더욱 성질 나게 만들어 버렸다.

확실히 내가 일본 가기 전에 외국인교수를 만나서 도쿄여행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가 말하길 도쿄에 가면 이건 꼭 해봐야 하는 것에 대해서 2가지를 말해 주었는데, 하나는 캡슐호텔에서 꼭 1박은 묵어보라는 것이었고, 하나는 시부야나 에비스 쪽에 가서 술을 열심히 마시라는 것이었다. 전자는 재미있는 체험이 가능하다고 했고, 후자는 도쿄에서 하루 구경하고 나면 할 게 없다고 자기도 남은 기간에서 시부야 클럽에서 술만 마시고 왔다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두 외국인 남성들은 도쿄가 딱히 재미없는 여행장소라고 보는 것 같았다.

다시 본제로 돌아가 그 외국인의 대화의 불똥은 호텔로 튀었다. 방이 왜 그리 좁냐, 조식이 왜 그렇게 쓰레기냐 라며 호텔 관계자들이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을 정도로 심한 말들이 와갔다. 그런데 무심코 오른쪽의 두 여성분들의 얼굴을 보니 완전 '저놈 뭐냐' 라는 식의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들은 동의하지 않는 것이겠지.

확실히 내가 돌아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도쿄 대부분의 지역이 여성 취향 위주로 되어 있는 느낌(아키하바라는 제외)이 왠지 모르게 들었다. 쇼핑 스팟도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남성들도 잘 찾아 다니면 놀 곳이 많지만 백화점 많은 거리들만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결국 남자는 씩씩거리면서 나갔고, 여성분은 역시 씩씩거리면서 한 소리 하면서 나갔다. 개인적으로 옆에 있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지만 그도 곧 나가버렸기 때문에 별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호텔방으로 돌아와 친구를 깨웠지만 결국 일어나지 않는 친구.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오늘 갈 곳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친구는 9시가 다 돼서 일어났고, 아침식사 후(그의 말로는 9시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하라주쿠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