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보드. 세진 컴퓨터 키보드



'세진'이라는 이름도 추억입니다. 당시 저의 첫 컴퓨터로 286이 집에 있었고 그 컴퓨터에 달린 키보드는 돼지꼬리가 달린 'SEJIN(세진)' 이라고 적힌 키보드였습니다. 그땐 아주 어려서 그게 좋은 키보드인 줄 모르고 PS/2 키보드로 교체함과 동시에 그 키보드를 버려버렸죠.. 그렇게 칭찬이 자자한 삼성전기의 구DT-35도 3개쯤 사서 2개를 단선으로 버리는 시절도 있었고 IBM 키보드도 잘 안눌린다고 부친께서 버리셨죠.... 의외로 전 키보드는 명기만을 써왔습니다.




http://www.kbench.com/?q=node/23120

10주년 기념모델이라 당시 키보드는 아닌데 대충 이렇게 생긴 키보드였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성에서 '응답하라 1992'라는 카피를 건 예전 알프스 백축을 사용한 키보드를 출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 키보드 생각이 나서 바로 질러보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갈축이 너무 심심해서 텐키레스 청축/흑축 모델 위주로 찾아보던 중에 그것보다 키압구분이 확실한 옛 알프스 백축이라면 확실한 키감과 경쾌한 스위치 클릭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한성이 최근 보급형 키보드 시장에서 많은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품질이나 AS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한성의 이런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도전정신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페이지가 뜬 당일에 구매했지만 예약판매인 탓에 시간이 꽤 지난 오늘에서야 수령하게 되었습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외관




한성은 늘 그랬듯 포장 하나는 열심히 합니다. 포장에 대한 클레임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겠죠.


예판구매자 한정으로 긴 마우스패드를 줍니다. 지금 쓰고 있는 패드가 더 크므로(!) 일단은 봉인

박스는 깔끔하지만 비싸보이는 포장은 아닙니다. 예전 느낌이라면 예전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뒷면이나 테두리 역시 별 다른 정보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내부 구성품입니다.


키보드, 더스트 커버, 키캡 리무버, WASD 추가 키캡이 들어있습니다.

USB 연결방식이고 아쉽게도 선은 돼지꼬리 선이 아니네요...ㅠ 살짝 아쉬운 부분입니다. 

케이블 자체는 24/28AWG로 스마트폰 충전용으로도 충분한 좋은 선입니다.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점은 이 더스트 커버가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보통 저렴한 키보드에는 저런 더스트 커버가 없어서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 먼지가 들어가게 되는데 저게 있으면 그걸 막아주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키스킨을 더욱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아래쪽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외형은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 키보드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화이트/그레이 투톤 컬러도 재현했구요. 오히려 저 윈도우 키가 어색할 정도죠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 엔터키가 역ㄴ자로 된 모델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건 확실히 레어한 레이아웃이기도 합니다




작동 LED 역시 예전 스타일 그대로 초록색 저휘도 LE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레이아웃은 기계식답게 스텝스컬쳐2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본체 재질 역시 예전 키보드 그 느낌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키캡 인쇄상태가 썩 맘에 들진 않습니다. 내구성은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네요




높낮이 조절대입니다. 기판이 드러나보이도록 옛날 느낌을 낼 필요는 없어보이는데 말이죠... 또한 높이조절대가 약해보입니다. 전 기본 높이가 딱 맞아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래쪽에는 미끄럼방지 고무와 고정걸쇠가 있습니다. 걸쇠를 노출시키는 디자인은 요즘 정말 보기 힘들죠. 대부분 나사로 고정하거나 보이지 않게 걸쇠를 만드니까요.





이 키보드는 1992 키보드답게 1992개 한정판매라고 합니다. 시리얼 넘버 역시 고유번호가 붙어있죠. 제껀 700번대네요




키캡/스위치, 그리고 분해!




동봉된 키캡 리무버를 이용해 키캡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알프스 백축입니다. 한 때 체리사보다 더 유명했던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죠. 지금은 나오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호환축'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다른 커뮤니티 글을 링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답하라 1992 에 사용된 알프스호환 스위치에 대해서


예전 레트로 타입의 키보드에서나 볼 수 있는 축으로 요즘 체리 그리고 호환축과는 전혀 다른 축 디자인이고 키캡 역시 호환되지 않습니다.




기본 키캡은 ABS 재질이며 마감은 괜찮습니다. 사출자국이 종종 눈에 보이지만 그거 없는 키캡은 엄청 비싸죠. 가격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사용기를 작성하다 문득 내부가 궁금해서 분해를 결심했습니다. 분해는 3가지 순서만 지켜주시면 다른 키보드만큼 쉽습니다.


1. 나사 4개를 제거한다

2. 상단(USB 선 빠지는쪽) 걸쇠 3개를 푼다.

3. 하단 걸쇠를 푼다.


하단 걸쇠를 가장 나중에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립 역시 역순으로 하셔야 합니다.




보강판이 있는 흔하고 단순한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USB 케이블에 단선방지 설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선을 매듭을 묶거나 키보드 하판으로 고정, 선에 스토퍼 장착 등으로 선을 잡아당겨도 안전한 구조로 설계하는데 이건 이런 처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더군요. 분해한 김에 단선방지 처리를 해줬습니다.




보강판에는 DFK-191M라는 글자가 음각되어있네요. 방향키에는  MCU 보호용인듯 종이가 한 장 붙어있습니다.




뒷면에는 스위치와 MCU 납땜자국이 보입니다. 아쉽게도 기판 앞면을 보려면 키캡을 모두 제거한 후 보강판을 드러내야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 귀찮아서 더 못하겠네요. 

어차피 제조사에서 동시입력 제한이 크다고 발표한만큼 성능에 대해선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판에는 위와 같이 마킹되어 있습니다. 혹시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불호 확실한 타건감


키보드에 손을 올려서 쳐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주 옛날에 사용했던 키보드 느낌도 났지만 소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팅팅하고 울리는 금속성 노이즈가 계속 잔향을 남기더군요. 제가 촬영한 타건 영상을 보고 가시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경질적이면서도 경쾌한 클릭음이 들려옵니다. 체리 청축이 아무리 시끄러워봤자 이거의 발 끝도 못 쫓아옵니다. 이거 치다가 청축을 치면 기계식치다가 조용한 멤브레인 치는 느낌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정말 소리가 큽니다.


다른 키보드는 어떤 소리가 날까 하시는 분들은 아래 접힘글에서 같은 환경에서 녹화/녹음한 타건영상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위 키보드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바로 감이 오실겁니다.





키압도 상당히 높아서 확실한 구분감과 누르는 맛이 있습니다. 적축과는 정반대로 강제로 파워타건을 하게끔 하는 강한 키압제가 이 리뷰를 작성하면서 손이 뻐근할 만큼 강력한 키압을 자랑합니다. 예전 키보드는 이렇게 치기 힘든 맛도 있었죠. 흑축 키압조차 뭔가 부족했다면 이 제품이 딱 적당하다고 봅니다.



문제의 팅팅 거리는 소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스위치의 클릭음과 키압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예전 느낌이 물씬 풍겨옵니다. 하지만 스위치를 치고 난 다음 금속성의 팅팅 울리는 소리가 저에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거슬렸습니다. 다음 동영상을 한 번 보고 가시죠. 


이어폰/헤드폰 착용을 권장합니다



초반에 키를 누르고 올라오는 과정을 잘 들어보시면 뒤에 팅팅 하고 금속성의 잔향소리가 남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는 녹음장비 상 잘 녹음이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스위치 클릭음과 거의 같은 음량으로 이 노이즈가 들립니다.


다른 유저분이 한성 측에 문의를 한 결과 일부러 스위치에 흡음제를 넣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이 노이즈는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서 한참 치다보니 머리가 아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키보드를 분해까지 했습니다. 보강판의 문제는 아니고 스위치 내부의 스프링이 공진을 일으키는 음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분들 역시 스프링 소음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키스킨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키-스-킨!


이게 너무 거슬려서 정말 예전 키보드는 이렇게 시끄러웠나 고민하던 차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키보드들은 전부 키스킨을 씌워서 사용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러한 소음이 잘 안들렸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 그래서 급히 방 안에 굴러다니던 실리콘 키스킨을 가져와 이 키보드에 씌워보기로 했습니다.




이제서야 제가 예상하던 소리를 내는 키보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금속성의 팅팅 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기존 소음에 비하면 스위치 소음에 가려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스위치의 클릭음은 여전히 존재감있게 들리고 있습니다. 


보통 기계식에 키스킨을 씌우는 사람들은 키보드를 너무 아끼거나 기계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취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키스킨을 씌우면 스위치 특유의 반발력이나 클릭음의 둔해져서 기계식이 멤브레인화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제품은 키스킨을 씌운 상태가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이 역시 개인적인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부분인데 저는 키스킨을 씌우는 편에 한 표를 주고 싶네요.


아쉬운 점은 한성측에서 공식적으로 이 제품의 키스킨 출시예정이 없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고로 이 키보드에 딱 맞는 키스킨은 아마 나오지 않을것입니다. 저로썬 아쉬운 부분이네요. 더스트 커버보다 키스킨이 훨씬 좋은데말이죠...



호불호가 강력하게 갈리는 키보드


이 키보드의 장단점, 그리고 타겟구매층은 확실합니다. 먼저 장단점을 나열해보도록 하죠


장점

클래식한 외관

구하기 힘든 알프스 백축 채용

구하기 힘든 추가 키캡/키캡 리무버/더스트 커버 제공

체리 흑축보다 더 센 키압

체리 청축보다 더 확실한 클릭음


단점

LED키캡은 커녕 촌스러운 구닥다리 외관

호환되는 키캡이 매우 적음 

아주 시끄럽고 손이 아픈 키보드

동시입력 성능이 떨어짐


장단점에 나열한 점이 결국은 호불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전 키보드만의 외관, 찰칵찰칵 거리는 소리, 청/흑축이 밋밋해 아쉬웠던 분들이라면 구매하시고, 

그냥 신기해서 질러보고싶다는 분들은 충분히 고민을 해보시기 바라며 

게임용/회사에서 쓸 사무용/화려한 디자인 등을 원하시면 바로 다른 제품을 찾아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아마 제가 글을 작성한 제품 중 가장 호불호가 심한 제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