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동기


헤드폰은 아직 HD600이라는 목표가 남아있지만 이어폰은 이미 종결을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모든 성향에 대해서 이어폰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트리플파이 / IM716 / EXS-X20, 그리고 막굴리기 용으로 사용하는 EtyKids 5까지. 사실상 모든 음악에 대응할 수 있는 라인업이죠ㅎㅎ.


아마 평생 이렇게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의 이런 굳은 결심을 흔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포낙 쪽으로는 유명한 Earphone Solution[사이트 링크]에서 연말 세일로 PFE232를 제외한 포낙 반값 할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라면 가장 무난한 PFE112나 리모트가 달린 132 등이 좋겠지만 전 도전을 생각했습니다.


※포낙 시리즈의 구분 방법


포낙은 3가지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래 자운드에서 제공하는 표[링크]를 참고하시면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렵다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하면



 숫자

첫번째 숫자 

두번째 숫자

세번째 숫자

0

 1시리즈&저음필터

 .

1

 오리지널 포낙

 일반 코드

 화이트

2

 듀얼 드라이버 포낙

 마이크 내장 코드 

 블랙 

3

 .

 마이크 & 볼륨컨트롤

 .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 112면 오리지널 포낙 + 일반 코드 + 블랙, 232면 듀얼 드라이버 + 3버튼 마이크 + 블랙 을 나타내는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0시리즈와 1시리즈는 완전히 동일한 유닛이며 필터만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2배 비싼 1시리즈를 살 바에 구성품과 필터를 필요한 것만 구매가능한 0시리즈가 인기가 좋았습니다. 저도 역시 1시리즈에 비해 절반 가량 저렴한 012를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1주일 정도 뒤 포낙이 도착했습니다.


언박싱



8개의 필터를 더 준답니다. 앗싸!




저렴한 가격에 비해 자석 여닫이 구조의 패키징은 좀 의외였습니다. 독일어, 영어, 불어 설명이 있습니다.




뒷면에는 제품 스펙과 장착법, 구성품 등이 나와있습니다. 


포낙 이어가이드가 그렇게 편하고 좋다 해서 예전 물량 부족할 때 사재기 현상까지 일어났는데, 전 이어가이드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저렴한 녀석을 선택했습니다(선이 굳으면 Non-PVC로 갈아버리는 패기).




구성품은 이게 전부입니다. 본체와 실리콘팁 S/M/L이 제공되는 깡통 구성이죠. 실리콘팁은 슈어의 실리콘팁과 유사하지만 노즐이 조금 더 넓습니다.




그리고 어디 한쪽 구석에서 튀어나온 필터 셋트. 전부 그린필터입니다ㅠ.


편한 착용감


음색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착용감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포낙은 많은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편한 이어폰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착용했을 때도 상당히 편하다고 알려진 Westone 2, 3 제품들보다 더욱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귓바퀴가 조금 작은 편인데 귓바퀴에 안착되는 형상이 제가 착용해 본 이어폰 중에서 귀에 가장 잘 맞았습니다.

다만 구조 상 깊은 삽입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설계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팁이 귓구멍 앞에 올려지는 형태로 착용이 되는데, 폼팁을 사용하면 약간의 이물감은 있습니다. 장시간 착용 시 귓구멍이 조금 아픈 편인데 이건 음악을 그만 들으라는 경고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네요.


살짝 난감한 코드


포낙은 재질(표면)이 거친 Non-PVC 코드로 추정되는 이어폰 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줄 꼬임을 방지하기 위해서 탄성이 상당히 센 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터치노이즈는 잘 제어가 되었기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둘둘 말린 코드가 어떤 짓을 해도 풀리지 않고 계속 말리는 현상이 있습니다. MP3를 플러그에 꽂고 몇 일간 잡아 당겨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특히 아웃도어에서 상당히 거슬리는데 어떻게 해결 할 방법이 없어서 조금 난감합니다.



뭔 짓을 해도 이 둘둘 말린 원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는다. 난감하다.


첫인상


처음 실리콘팁을 장착하고 들은 포낙의 소리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소리와 아주 많이 다른 이 소리. 저음은 답답하고 고음은 다 잘라먹고... 이게 그렇게 칭찬받는 소리라고? 딱 2 만원짜리 이어폰의 소리였습니다.

제품이 잘못된 것인지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던 상황에 해볼 수 있는 걸 해보자 해서 필터를 빼봤습니다.


환골탈태. 필터가 웬수였습니다. 이렇게 맑고 밝은 소리를 내는데 그걸 다 잡아먹는 필터를 끼웠다고? 이건 함정카드, 그 중에서도 TOP 급이더군요. 무슨 생각으로 그린필터를 만들었을까 욕을 신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필터가 없으니 고음이 엄청 쏩니다. 저음은 좀 많이 없더군요. 슈어 총알팁(폼팁)으로 교체해보았으나 쏘는 고음이 잡히지는 않더군요. 


물론 그레이 필터나 블랙 필터를 사면 됩니다. 그린필터가 이렇게 망작일 줄 알았으면 해외배송 시 묶음해서 질렀겠죠. 근데 그걸 나중에 알았고 포낙이 이어폰 사업을 접었기때문에 필터 구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재고가 있는 사이트(공식 홈 등)에서 필터만 따로 사면 거의 3 만원 돈이 들어갑니다. 국내는 이미 재고 바닥난 지 오래죠. 필터 가격이 절대 싼 가격이 아닌지라 그냥 자체 설계가 낫다 싶어서 그렇게 설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자체 제작 필터 설계


필터 제작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피크가 쏘지 않을 것.

2. 저음 양을 er4s와 비교했을 때 조금 늘릴 것.

3. 밝은 음색일 것.

4. 상위 조건을 만족하면서 er4s와 유사한 FR을 만족할 것.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의 입맛, 아니 귀맛에 맞는 이어폰을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이어폰의 필터를 테스트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필터 제작을 시도하여 1시간 만에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아래에 적히는 포낙의 음색은 아마 기본 필터로는 나오지 않는 음색일겁니다. 그냥 참고로 봐주시면 될 것 같네요.


이 제품을 들고 이어폰샵 방문[http://flymoge.tistory.com/1058] 시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의외로 제가 들고 간 포낙과 가장 비슷한 소리를 내주었던 녀석은 AKG의 K3003이었습니다. 고작 5만원과 130만원 제품[각주:1]을 비교했으니 당연히 전 대역의 분리도와 음의 밀도는 3003이 월등했습니다. 하지만 3003의 저음이 꽤나 부풀었다는 것과 소리가 살짝 더 깔끔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FR과 Step Response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색평가


이 포낙의 소리는 꽤나 플랫한 듯 느껴지지만 W 형태의 음색을 보여줍니다. W라고 해서 모든 영역이 소리를 꽥꽥 지르는 것이 아닌 위에 적힌 타겟과 같이 ER4의 FR과 유사한 음색을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뜻 들으면 ER4와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언뜻 들으면 EXS-X20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K3003와도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자세히 언급해보면 저음은 극저음이 조금 부스팅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X20의 저음을 85, ER4S의 저음을 100으로 두면 포낙의 저음은 110~115 정도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극저음이 늘어난 것에 비해 중저음은 깔끔한 상태를 유지해서 상대적으로 중저음은 살짝 빠지는 느낌을 줍니다. 대신 소리는 답답하지 않고 깔끔합니다.

물론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사용한 커널들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저음은 아닙니다. 싱글 듀서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응성은 빠르지만 싱글 BA를 사용한 커널(ER4 등)에서 자주 만나는 저음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음은 3k대가 살짝 억제되어 있습니다. 이건 드라이버의 특성으로 보여지는데, 그렇다고 보컬이 멀리있거나 묻히지 않습니다. ER4S의 보컬이 귀 바로 앞에서 조금 밝은 톤의 음성이 나오는 것이라면 포낙의 보컬은 한 2발짜국 정도 뒤에서 살짝 어두운 톤의 음성이 나옵니다. 이건 취향차이인데, 개인적으로는 3k대가 조금 꺼진 포낙의 튜닝에 한 표를 던집니다. 가끔 보컬이 부담스럽게 녹음된 곡에서는 ER4 음색은 부담스러운데 포낙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음은 피크를 잡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포낙 무필터 상태에서는 7k, 10k 대에서 강한 피크 2개가 존재합니다. 이 피크를 다 잡을 순 있는데 그러면 저음이 꽤나 답답해지더군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이 피크를 수용하면서 밝은 소리를 구현했습니다. 특히 폼팁과 조합하면 꽤나 들을만한 피크가 나타나더군요.

7k 피크는 꽤 잡았습니다. 하지만 10k 피크는 조금 남겨봤더니 고음부가 꽤나 세밀해지면서 음악이 재밌어지더군요. 게다가 이어폰샵 청음 시 이렇게 10k 부분의 고음쪽 피크를 잡지 않고(못 잡은건지 안 잡은건지는 의문이지만) 그냥 두는 제품들이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 상태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앞서 언급한 3003과 유사한 음색입니다. 3003도 피크가 존재하는데 이게 잘 제어되어서 해상도가 상당히 높게 느껴집니다.

딱 한 가지 불만인 점이 있다면 100곡 중 1곡 정도가 이 10k 피크 때문에 고음이 거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걸 조금 줄여보려고 했는데 전체적인 음색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귀차니즘도 있고 해서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그 외의 특징은


타격감 : 꽤 쎕니다. 비트나 드럼의 타격감이 꽤나 마음에 드는데 이건 제 취향에 맞춰 튜닝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드라이버 특성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분리도 : 싱글 BA를 사용한 이어폰의 평균 정도 됩니다. 세밀한 표현이 가끔씩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게 팁이 잡아먹었다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확답을 내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최소한 BA를 쓴 이어폰 중 중간 이상은 됩니다.


공간감 : 스테이징이 썩 넓지는 않습니다. ER4처럼 좁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파처럼 넓진 않습니다.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으로 보여지네요.


장르매칭 : 대부분의 장르에 적합하지만 음색이 밝은 편이라 취향에 따라 랩/힙합 과는 조금 안 맞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이어폰은 일렉트로닉, 주로 트랜스 음악에 맞추어 튜닝을 했기 때문에 이쪽 장르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전자음악은 전반적으로 궁합이 좋으며 락이나 메탈 류도 꽤 들을만합니다.

이번 이어폰 튜닝을 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의식한 곡이 Madeon - Technicolor[유튜브 링크]입니다. 최소한 제가 가진 기기들 중에서 이 음악은 포낙이 가장 맛깔나게 들려주네요.


결론


결국 이 이어폰은 저의 완소 이어폰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튜닝해서 생긴 애착도 있겠지만 일단 제가 듣는 음악과 가장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게임은 이미 끝난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편한 착용감, 저렴한 가격.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사실 3003 모델의 가성비는 좋은 편이 아닙니다. 수공업이라서 좀 터무니없이 비싼 편이 있죠.) [본문으로]